넷플릭스 콘텐츠 ‘K팝 데몬 헌터스’가 연일 새로운 기록을 쏟아내고 있다. 음원 ‘골든’은 빌보드 글로벌 차트 1위에 올랐고, 세계 최대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의 영화 사운드트랙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가상의 아티스트가 세운 최초 기록으로 신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다. 빌보드 차트 100위 안에는 K팝 데몬 헌터스 수록곡 7개, 로제의 ‘APT.’와 블랙핑크의 ‘뛰어’까지 들었다. K팝 30주년이 되는 내년엔 방탄소년단이 돌아온다. 일련의 신기록과 새로운 기대감은 올해 상반기 K팝 음반 수출액과 판매량이 꺾이자 확산한 위기감을 단숨에 지워버렸다. ‘K팝은 지속 가능한가’란 물음표와 함께.
혁신은 20년 경쟁의 결과
K웨이브는 또 다른 영역에서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상반기 K뷰티와 K푸드 수출은 다시 한번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문화 콘텐츠로 소비되던 K웨이브가 예술의 영역을 넘어 수출 산업으로 진화한 것이다. 하지만 K뷰티와 K푸드의 글로벌 인기는 한류로만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이들 산업엔 수십 년간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끊임없이 탐구하며 체득한 ‘혁신성’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K뷰티 혁신의 시작은 20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아모레퍼시픽 화장품 브랜드 아이오페의 ‘에어쿠션’이 처음 나왔을 때 모두 의아해했다. 콤팩트 케이스 안에 자외선 차단 기능을 갖춘 액상 형태의 파운데이션을 스펀지로 찍어 바르는 그야말로 이상한 제품이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수년 이내에 샤넬, 랑콤, 디올 등 글로벌 브랜드들이 잇달아 쿠션 제품을 내놨다. 독일 피부과에서 사용하던 치료제를 상품화한 BB크림, 한때 따이궁들이 면세점에서 쓸어 담던 마스크팩 등도 K뷰티 혁신 제품이다.
K뷰티 열풍이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지금은 하루가 멀다고 새로운 성분, 제형, 기능의 제품이 쏟아진다. 소비자의 니즈를 누구보다 빠르게 포착해 제품에 반영하는 민첩한 속도와 기술력은 세계 1위 화장품 수출국인 프랑스는 물론 그 어떤 글로벌 브랜드도 따라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K뷰티만의 독보적인 강점이다.
서사와 혁신의 융합
K푸드도 마찬가지다. K푸드가 K콘텐츠의 인기에 힘입은 일시적 유행을 넘어 수출 산업으로 자리 잡은 배경엔 K푸드테크가 있다.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국내 가공식품업체들은 수십 년간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바삭하게, 촉촉하게 제품을 차별화할 수 있을지 연구해 왔다. 만두와 즉석밥 관련 특허만 100여 개에 이를 정도다. 이런 연구개발 노력은 최근 글로벌 시장 확대와 맞물려 가속화하고 있다.
혁신과 기술, 여기에 한국적 서사와 정서가 녹아들어 탄생한 독특한 수출 산업이 K뷰티, K푸드다. 20여 년간 전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를 상대로, 가장 치열한 각축장에서 고민과 실행, 실패를 거듭하며 축적한 혁신 역량을 자산으로 글로벌 무대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한 것이다. 또 다른 20년 K웨이브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지 기대된다. 정부는 이 산업을 국가 성장 동력으로 키우기 위해 규제 완화 등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