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혁명 ‘자유문명국’ 비전으로 임정 출범
광복 뒤 ‘3·1운동’ 격하, 기념-교육 겉돌아
역사적 공동경험으로 통합 계기 마련해야
영국 기자 프레더릭 매켄지는 거족적 만세 시위와 독립선언서에 대해 “압제와 중세기적인 군국주의로부터 벗어나서 자유와 평화”를 향해 투쟁하는 “새로운 아시아의 외침”이라고 평가했다. 이후 각지 한국인들은 이를 늘 3·1혁명이라고 불렀고 1944년 임시약헌에 ‘3·1 대혁명’이라고 명기했다. 이러한 관행은 1948년 제헌국회 때까지 지속되었다. 1897년 독립협회에 이어 1907년 대한신민회가 민주공화제의 ‘자유 문명국’ 건설을 미래 비전으로 채택한 이후 3·1혁명이 모색되고 성취되는 과정은 구미 기독교와 민주공화주의로 개명된 각계각층 개인들에 의해 주도됐고 그 결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자유주의적 민주공화국으로 출범한 것이다.
그런데 광복 후 언제부턴지 3·1혁명은 ‘3·1운동’으로 슬그머니 바뀌었고 ‘독립선언 기념식’은 ‘3·1절 행사’로 전락했다. ‘3·1절’은 광복절이나 제헌절, 개천절과 달리 그 뜻이 담긴 단어가 없는데도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한 번도 없었다. 정인보는 “이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라고 기렸고 “동포야 이날을 길이 빛내자”고 권했지만, 이는 행사용 노래일 뿐 우리의 정치와 교육은 이러한 역사의식과는 무관하게 겉돌았다.
그래서 태화관 자리의 ‘독립선언 광장’은 초라하기 짝이 없고 독립선언서 강판은 벌겋게 녹슬어 전혀 읽을 수 없다. 탑골공원에서 곁방살이로 연명하고 있는 ‘3·1운동’ 조형물들은 다 낡고 헐어 보기 민망하다. 전국 각지의 ‘3·1운동’ 기념 공원에 독립선언서가 제대로 세워져 있는 곳을 찾기 어렵고, 있다고 해도 “吾等은 玆에”로 시작해 그 뜻을 제대로 알고 읽기 어렵다. 어떤 데는 그것이 새겨진 돌덩어리를 땅바닥에 뉘어 놓아 밟고 올라가게 유도하고(?) 있다. ‘독립’ 기념관의 높다란 돌탑에는 독립선언서가 없고 이상한 추상화만 붙어 있어 각지에서 오는 우리 청소년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 모두 혼이 빠지고 넋이 나간 몰골로 3·1혁명을 가리고 있다.그러나 3·1혁명은 동학농민전쟁, 독립협회, 대한신민회, 의병 투쟁, 대한자강회, 국채보상운동, 안중근 의거, 동제사와 신한청년당, 대한인국민회 등의 민족운동이 결집한 대전환의 분기점이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연원하여 통합 임정, 무장투쟁, 민립대학 설립, 신간회, 조선학 운동, 광복군 조직 등의 민족운동이 전개됐다. 우리의 자유주의적 민주공화국의 역사는 3·1혁명 전후의 이런 민족투쟁과 함께 이어지고 지켜지며 숙성돼 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떠한 “근대화”도 “국가적 독립이 전제된 상태에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전파했던 미국 선교사 호머 헐버트는 일제 치하에서 구차하게 “살아 이 민족의 손에 노예가 됨보다 차라리 죽어 자유의 혼이 되겠다”며 투쟁하던 한국인들에게 희망을 걸었고, 인도 시인 타고르는 이러한 한국인들을 “동방의 등불”이라고 칭송했다. 바로 이러한 자유주의적 민주공화국의 역사를 이어받아 1948년 제1공화국 정부가 수립됐고, 이후 3·1정신과 임시정부 계승의 전통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북한의 6·25 남침에 대한 항전도 이러한 전통을 지키는 민족투쟁의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난 80년 동안 대한민국의 뿌리인 3·1혁명을 홀시(忽視)하여 그 바른 모습에 무지한 채 형식적인 ‘3·1절’ 행사만 치러 왔다.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의 게으름과 무관심을 떨치고 우리의 근현대사를 ‘3·1혁명 전후사’를 큰 줄기로 재정립하고 눌려 있던 정치와 교육의 대의(大義)를 살려야 한다.
그 첫걸음이 바로 3월 1일을 본래대로 ‘독립선언기념일’로 제정하는 일이다. 그날로부터 우리는 모두 비로소 서로 부둥켜안고 함께 경쟁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나의 사랑하는 동료 시민’이 되는 것이며 이는 곧 지금 이 자리의 우리 개개인들이 역사적 공동(共同·COMMON) 경험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정치·사회적 통합의 계기를 새롭게 마련하는 것을 의미한다.이제 광복 100주년이 20년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 모두 누구라도 먼저 ‘나라 주인’으로 발심하고 나서야 할 일이다.
정윤재 한국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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