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신념이 위험하다 [장석주의 영감과 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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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서울역에서 종종 마주쳤다. 그는 날씨가 궂거나 맑거나 상관하지 않고 ‘불신 지옥 믿음 천국’을 외치며 서울역 일대를 누빈다. 구두는 낡고 입성은 후줄근하다. 그 사내를 볼 때마다 생계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제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지가 늘 궁금했다. 그를 붙잡고 물어본 적은 없다. 그가 쓰는 용어를 보면 기독교 신자임이 분명하다. 그가 제 신앙을 널리 알리려고 나선 것은 갸륵한 종교적 신념 때문일 거라고 추측한다. 그와 엇갈리며 걸음을 멈춘 사이 신념이란 무엇일까 하는 물음이 스쳐갔다.

살리기도 하고 죽게도 하는 칼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게도 한다는 점에서 신념을 칼에 견줄 수도 있다. 칼은 주방의 조리 도구지만 살상용 무기로 쓰이면 흉기로 변한다. 칼이 그렇듯이 신념은 쓰임의 사회적 맥락과 방식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우리는 신념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고 타인의 신념에 동조하거나 저항한다. 사람들은 제 신념에 따라 무엇을 하거나 무엇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채식을 하고 누군가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누군가는 복음을 전도하고 누군가는 종교 따위는 필요 없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총을 들고 싸우는가 하면 누군가는 징집을 거부하고 총을 들지도 않는다. 신념은 우리를 움직일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속사람을 드러내기도 한다.

신념은 세뇌보다 대체로 내면에 자발적으로 응집하는 무엇이다. 신념은 고집이나 편향된 생각, 혹은 굳어서 고착돼버린 사고 체계와 다르다. 그것은 순정하고 고결한 가치를 향한 믿음이다. 더 세밀하게 보면 그것은 믿음, 판단, 감정, 가치관의 총합이다. 신념은 우리 사회적 자아의 한 부분이고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성분이다.

내 신념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우리의 신념을 빚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지역, 환경, 문화, 이념, 인종, 성별, 종교, 세대, 성적 지향성 따위다. 이것들이 우리 안에 스미고 섞이면서 미분화 상태의 신념은 윤곽을 갖추며 또렷한 형태를 나타낸다. 이렇게 만들어져 내면에 자리 잡은 신념은 평생 우리 말과 행동의 원천이며 삶의 숨은 원리로 작동한다.

상대를 악마화하는 신념은 독

신념은 주체의 말과 행동, 감정의 결과 의지의 방향성을 조종하는 배후다. 사람은 여러 신념에 둘러싸인 채 평생을 산다. 더 엄격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저마다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산다. 사람들이 품은 신념의 다양성은 피할 수 없는 실존 환경이다. 신념은 특히 정치와 종교 분야에서 분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동일한 신념을 가진 집단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신념을 복제하고 동화되면서 응집하는 경향을 보인다.

작금의 우리 현실에서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것은 진보 신념과 보수 신념의 대립 및 갈등이다. 진보 신념과 보수 신념으로 갈린 사람들이 보는 현실은 하나가 아니다. 한쪽은 현실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른 한쪽은 모순과 부조리를 가진 현실을 더 낫게 바꾸기 위해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초기 보수 이념을 가다듬은 사상가가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라면 진보 신념에 자양분을 대준 이는 존 로크(John Locke)라고 할 수 있다. 보수 신념의 핵심 가치를 간추려 말하자면 전통, 안정성, 질서, 점진적 변화다. 보수 집단은 토지와 지대, 금융 자산을 제 피난처로 삼는다. 반면 진보는 도덕적 평판, 명예, 양심에 따른 행동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진보 집단은 혁신과 평등, 개인의 자유의지, 자율성, 민주주의를 제 신념의 근간으로 삼으며 주류 체제를 비판한다.

우리 현실에서 진보와 보수로 갈린 신념이 맞서며 불거진 갈등은 매우 심각한 상태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상반된 신념은 제 이익을 위해 맞서고 충돌한다. 한쪽은 현실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혁신이 필요하다고 맞선다. 상대를 악마화하는 신념, 이성적 판단을 넘어선 신념, 괴이하게 비틀린 신념은 항상 독재나 파시즘의 좋은 먹잇감이다. 통시적으로 살펴보면 이 세상의 모든 독재 권력이나 전체주의 권력은 그 먹잇감을 삼키며 몸피를 키운 걸 알 수 있다.

좌우 균형 잃은 새는 날지 못해

현실이 요동치는 변화 국면에서 당신의 신념이 위험할 수도 있다. 당신의 신념을 의심하고 돌아보라. 의심과 검증이 없는 신념은 잘못된 행동을 낳을 수 있다. 의심받지 않고 견제받지 않는 신념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 같다. 내 신념이 항상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나는 항상 옳고 너는 틀렸다는 강직된 태도와 자기 신념의 무오류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우리를 극단으로 몰아간다. 신념이 잘못된 확증 편향을 키우는 사이 그것은 외부에서 유입된 불순물과 뒤섞이며 더럽혀진다. 타락한 종교 신념의 극단화는 광신으로, 타락한 정치 신념의 극단화는 테러리즘으로 연결된다. 이것들은 독재나 파시즘 체제의 불쏘시개로 힘을 보태면서 세계를 불구덩이로 내모는 끔찍한 사태를 만들 수도 있다.

내가 만든 신념이 사회적 자아를 빚고 나를 하나의 전체로 발명한다. 우리의 삶은 신념에 따라 다른 모양을 갖추는데 이는 삶이 저마다 다른 신념으로 짠 피륙이기 때문이다. 신념은 언제 가치가 있는가? 신념은 정치적 올바름, 도덕적 당위, 타인을 향한 환대와 만날 때 상생을 일궈내며 빛날 수 있을 테다. 한 사회에서 신념은 건강한 방식으로 비판과 견제를 하며 공존하는 게 옳다.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은 채 균형을 유지하는 신념은 건강한 사회 건설을 위한 초석이다. 새도 좌우 날개로 난다고 하지 않는가? 좌우 힘이 균형을 이루지 못한 새는 지속해서 날지 못하고 추락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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