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음모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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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음모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근자에 ‘음모론’이란 말이 자주 나온다. 대체로 우파가 의혹을 제기하면 좌파가 ‘음모론’이라고 폄하하는 양상이다. 원래 음모론은 “어떤 사회적 사건이나 현상은 흔히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음모에서 나온다는 이론”이다. 사람들은 갖가지 음모들을 꾸미므로, 음모론은 설명력이 크다. 19세기 말엽에 처음 쓰였을 때, 음모론(conspiracy theory)은 이런 중립적인 뜻을 담았다. 지금 그 말은 “보다 합리적인 설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상황을 특정 집단의 음모에서 찾는 주장”을 뜻한다. 따라서 음모론이란 말엔 으레 폄하의 뜻이 담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어떤 ‘그른 음모론’을 대치하는 설명도 필연적으로 음모론의 모습을 한다는 점이다. 사회적 사건이나 상황의 설명에서 음모를 제외하면, 남는 것은 우연, 실수, 무지와 같은 무작위성(randomness)이거나 무슨 법칙과 같은 보편성(universality)이다. 무작위성과 보편성은 모든 사건이나 상황에 작용하므로, 그런 대안적 설명이 그른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설명은 정보로서의 가치가 작다.

클로드 섀넌이 밝힌 대로, 정보의 가치는 어떤 일이 얼마나 놀라운가에 달렸다. 일어날 확률이 작을수록, 그 사건은 정보의 함량이 크다. “내일 아침에도 해가 뜬다”는 얘기에 얼마나 값진 정보가 담겼나? 무작위성이나 보편성에 바탕을 둔 설명들은 정보의 함량이 너무 작다. 결국 어떤 음모론의 대안은 다른 음모론이다.

사회를 이뤄 살아가므로 사람들은 늘 협력한다. 그런 협력은 무슨 일을 꾸밀 때 두드러진다. 좋은 일이면 계획이나 협의라 불리고 나쁜 일이면 음모라 불린다. 둘 사이에 본질적 차이는 없다. 원래 음모는 인류 사회를 만들고 인류 문명을 낳은 힘이다. 인류 문명은 대략 기원전 1만 년 전에 사람들이 동물들과 식물들을 길들여서 가축과 작물로 만든 데서 비롯했다. 그러나 가축과 작물의 길들이기는 먼저 사람들이 자신들을 길들이는 데 성공해서 잘 짜인 사회를 이룬 덕분에 가능했다. 인류의 이런 자기 길들이기는 인류의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 일을 설명하는 이론들 중 가장 그럴듯한 것은 리처드 랭엄의 ‘언어에 바탕을 둔 음모 가설(Language-based conspiracy hypothesis)’이다. 다른 사회적 동물들과 달리, 사람의 경우엔 성격이 거칠고 가장 힘센 개체가 지도자가 되는 일이 드물다. 발달된 언어 덕분에 인류 사회에선 정교한 음모들을 꾸밀 수 있었고, 덕분에 힘이 약한 남성들이 연합해서 가장 힘세고 공격적인 우두머리 남성(alpha male)을 제거할 수 있었다고 랭엄은 주장한다.

음모론이 폄하되는 까닭은 음모론이 많고 흔히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몇 가지 정황만으로 그럴듯한 결론을 도출하고 그것을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악의적으로 유포되는 음모론도 많다.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광우병 파동’이 대표적이다.

보다 중요하게 사람의 천성이 음모론에 호의적이다. 어떤 것이 없는데 있다고 판정하는 것은 위양성(false positive)이고, 있는데 없다고 판정하는 것은 위음성(false negative)이다. 언뜻 보기에, 이 둘은 대칭적이다. 그러나 그것들의 결과는 크게 다르다. 위험이 없는데 있다고 판정하는 것이 위험이 있는데 없다고 판정하는 것보다 생존에 훨씬 유리하다. 그래서 매사를 의심의 눈길로 살피는 사람들이 생존 가능성이 높아 자식을 많이 낳을 것이다. 그런 자연선택의 과정을 거쳐, 인류는 작은 일에서도 큰 위험을 느끼는 마음을 지니게 됐다.

천성적으로 위양성에 끌리니, 우리는 음모론에 끌리는 자신의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다른 편으로는, 위양성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사실이 있다. 근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온갖 비리와 추태를 확인하면서 부정 선거 의혹처럼 사회를 근본적 수준에서 위협하는 일에선 위음성의 치명적 실수 가능성을 되짚어볼 만하다. 국가기관은 많은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사안에 대해 스스로 성실하게 해명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합리적인 근거와 증거를 통해 의혹을 검증하고 해소해 나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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