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미·중 패권 경쟁의 새 전선, 파나마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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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미·중 패권 경쟁의 새 전선, 파나마운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한 뒤 첫 한 달 동안 쏟아낸 대내외 정책 상당수는 유세 기간에 예고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새롭게 캐나다 합병, 그린란드 매입, 파나마운하 통제권 회수, 멕시코만 명칭 변경, 가자지구 휴양지 개발 등 팽창주의 발언을 퍼붓고는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곧 회동할 예정이다. 과거 냉전 시대와 같은 강대국 간 세력 범위 분할로 가는 건 아닌지 불길하기만 하다. 어느 하나 명확하게 결정된 것은 없지만 방향이 드러난 파나마 운하 사례를 들여다보자.

파나마운하는 홍콩과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다. 홍콩은 아편전쟁의 결과로 영국에 99년간 조차됐다. 파나마운하는 콜롬비아 영토였던 지역에 미국이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운하를 건설했지만 콜롬비아 상원이 ‘99년 조차’를 거부하자 주변 지역을 신생국 파나마로 분리독립시켜 운하를 영구히 조차했다. 홍콩은 1997년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약속받고 중국에 반환됐고, 파나마운하는 영구 조차에 대한 국제적 비난에 밀려 지미 카터 미 대통령 집권 중 체결된 양국 간 조약에 따라 1999년 파나마에 이양됐다.

홍콩과 파나마운하의 만남은 1997년 시작됐다. 파나마는 운하 인수를 앞두고 국내 5개 항만을 모두 민영화하기로 해 25년간의 운영권을 국제 입찰에 부쳤는데 이 중 운하 양 끝의 가장 큰 두 화물컨테이너항이 홍콩계 허치슨포트에 돌아갔다. 오늘날 세계적인 항만 회사로 성장한 허치슨포트는 당시 글로벌 물류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해 파나마 진출을 결정했다. 이미 파나마는 총인구 중 중국계 비중이 1997년 기준 4.7%로 북중미 지역에서 가장 높았다. 홍콩 반환과 같은 해였지만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이 우려할 수준은 아닌 시기여서 미국 회사가 제기한 입찰 과정의 불공정 시비는 주목받지 못했다.

중국 금융자본의 존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급속히 부각됐다. 중국은 2013년 시진핑 체제 출범과 함께 아시아·유럽·아프리카를 향해 인프라 개발 지원사업인 일대일로(一帶一路·BRI) 구상을 내걸었다. 트럼프 1기 정부 첫해인 2017년 파나마는 대만과 단교하고 BRI에 서명한 첫 중남미 국가가 됐다. 이를 계기로 BRI는 이듬해부터 중남미 지역으로 공식 확대돼 지금까지 중남미 20여 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이는 중남미 국가의 중국 자금 의존도와 중국의 이 지역 영향력이 높아졌음을 뜻한다. 민영화된 항만과 파나마운하청 관리 아래 있는 파나마운하는 별개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2020년 홍콩보안법이 강행된 이후 홍콩이 중국 정부의 통제하에 들어갔기 때문에 미·중 충돌 상황이 발생할 경우 중국이 파나마 내 영향력을 이용해 미 군함의 운하 통행을 방해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중국에 호전적인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이달 초 첫 해외 순방지로 파나마를 택한 것도 중국과의 연결고리를 끊으려는 것이었다. 파나마 정부는 트럼프 취임 직후 허치슨포트가 누리는 과도한 세금 혜택과 계약 체결 과정에 대한 세무사찰에 착수했고, 루비오 장관 방문 중 중국에 BRI를 탈퇴한다는 사전통지문을 보냈다. 최근 엘니뇨 현상에 따른 운하 수량 부족 사태로 미국의 기술 지원이 필요해진 파나마로서는 BRI 참여가 중국 유·무상 원조의 유일한 조건이 아닌 만큼 BRI 탈퇴로 잃는 것보다 미·중 간 균형외교에서 얻을 이익을 기대했을 것이다.

과연 미국은 1989년 파나마 침공과 마누엘 노리에가 대통령 압송 이후 36년 만에 또다시 파나마 국민에게 굴욕감을 주며 반미 감정을 자극할 필요가 있었을까. “미국의 강압외교”란 비난 성명만 낸 중국은 미국의 이 같은 전략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 것일까. 만일 중국이 이를 세력범위 분할이란 새로운 게임의 룰로 인식한다면 우리는 중국의 대응이 그간 영향력을 키워온 중남미보다는 동아시아지역에서 나타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트럼프는 최근 19세기 미 정치인들이 북미 대륙 내 영토 확장을 정당화할 때 사용한 미국의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표현을 즐겨 쓰고 있다. 트럼프의 신팽창주의가 중국의 대담한 응수를 정당화시킨다면 우리에겐 ‘명백한 위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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