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관세만 걱정할 때 아니다

4 days ago 2

[다산칼럼] 관세만 걱정할 때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만큼 요긴한 게 약(弱)달러다. 미국 무역 적자 줄이는 덴 약달러가 보약이다. 하지만 너무 약해지면 달러화 글로벌 패권에 금이 간다. 약달러 처지에 기축통화국이라 우기는 건 체면 구기는 일이다. 달러 패권의 전제조건이 강(强)달러다. 이렇듯 약달러와 달러 패권은 상충되는 목표다. 그래도 두 개를 동시 달성하는 것이 트럼프의 노림수다. 현실은 트럼프 마음에 들게 돌아가지 않는다. 트럼프 특유의 무리수와 우격다짐 발동이 우려되는 이유다. 애먼 나라로 불똥이 튈 수 있다. 그게 한국일 수 있다.

우선 미 달러화가 약세 아닌, 초강세다. 달러화 실질실효환율 지수가 115를 돌파했다. 1985년 9월 ‘플라자 합의’ 시절 수준까지 치솟았다. 당시 미국은 엔화 가치를 달러당 240엔에서 120엔까지 끌어올려 강달러 탈출에 성공했다. 반면 일본 경제는 장기간 경기 침체에 시달리게 된다. ‘잃어버린 20년’의 시작점이 플라자 합의다. 최근 제2의 플라자 합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은 이른바 ‘마러라고(트럼프 대통령 별장) 합의’를 제안한다. 급하면 누군가의 팔목을 비틀어 달러화를 약세로 만들겠다는 거다. 합의로 포장된 으름장이다.

달러화 글로벌 패권이 도전받는 현실도 트럼프의 마음에 들 리 없다. 2023년 브릭스 5개국(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이 ‘브릭스 통화’ 발행 계획을 발표했다. 트럼프가 곧바로 응징에 나섰다. 브릭스 통화를 포기하지 않으면 100% 관세 부과, 미국 시장 접근 차단을 경고했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군사 지원과 연계한 달러 패권 지속 방안을 제시한다. 미국의 안보 우산 신세를 지는 동맹국에 미 장기국채 매입을 요구하는 거다. 베센트 장관은 일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지목했다. 한국이 빠졌다고 안심할 순 없다. 다음 순서는 불 보듯 뻔하다.

미 국채 글로벌 수요 증가는 달러화 강세로 이어진다. 이는 달러 패권과 직결된다. 미국은 실물경기 부양 효과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요즘 트럼프는 미 중앙은행(Fed)을 겨냥한 금리 인하 압박 발언을 중단했다. 굳이 Fed가 기준금리를 안 내려도 10년물 장기금리 인하로 경기 진작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달러화 지배력 지키기는 디지털화폐 영역에서도 치열하다. 지난 1월 23일 공표한 미국 대통령 행정명령은 디지털 달러 패권 수호 선언이다. 우선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의 미국 내 유통·발행을 전격 금지했다. 중국이 주도하는 CBDC 생태계에 던진 경고장이다. 행정명령은 CBDC 대신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세계적 확산 의지를 밝혔다. 트럼프가 이렇게 강하게 나오니 국제결제은행(BIS)이 ‘엠브리지(mBridge)’ 프로젝트에서 슬그머니 발을 뺐다. ‘mBridge’란 국가 간 자금 이체 시 CBDC 사용을 실험하는 플랫폼이다. 중국, 홍콩, 태국, 아랍에미리트(UAE) 4개국 중앙은행이 참여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늘수록 미 국채 수요도 확대된다. 스테이블코인의 상환을 보장하는 준비금 역할을 미 국채가 하기 때문이다. 준비금 쌓으려면 달러화가 필요하다. 자연스레 달러 패권이 강화된다. “스테이블코인이 달러의 지배력을 국제적으로 확장할 기회를 제공한다.” 데이비드 색스 백악관 암호화폐 차르(tsar)가 주장하는 미국의 셈법이다.

트럼프의 약달러 추구와 달러 패권 집념은 우리나라에 숙제를 던진다. 구체적으로 ①대미 무역 흑자 확대를 빌미로 원·달러 환율 조정을 요구하면 원화 가치를 무슨 수로 끌어올리나. ②100년짜리 미 장기국채 매입으로 외환보유액 구성이 바뀌면 위기 때 문제 없나. ③무역거래 지급결제 수단으로 스테이블코인이 사용되면 외환당국과 세관이 거래 내역을 파악할 수 있나 등의 질문이 가능하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어떤 답을 갖고 있는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기사가 눈길을 끈다. 일본 정부는 미국을 달래려 선제적 대응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엔화 평가 절상, 군사 방위비 납부용 미 장기국채 매입 등도 필요하면 빠르게 추진할 것으로 예상한다. 꾸물거리다 독촉받느니 한발 먼저 움직여야 거래에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우리도 관세만 걱정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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