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경쟁 있어야 담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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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경쟁 있어야 담합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아파트 시스템 가구 담합을 적발한 데 이어 국내 시중은행의 담보인정비율(LTV) 담합 의혹에 대해 재조사에 들어갔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등 국내 4대 은행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LTV 자료를 공유하고 이를 비슷한 수준으로 낮춘 혐의다. 2023년부터 조사가 시작돼 지난해 두 차례 전원회의를 열었지만, 공정위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심사관에게 재심사 명령을 내렸다. 2020년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정보교환 행위를 담합 행위 자체에 대한 합의로 추론할 수 있도록 하면서, 이번 사건이 해당 법 적용의 첫 사례가 될 수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 공정거래법을 포함해 세계 각국 경쟁법의 초석인 미국 셔먼법(Sherman Act)은 19세기 말 기업들의 노골적인 담합에서 비롯됐다. 당시 미국의 경기 침체로 수요가 위축되자 기업들은 공격적으로 가격을 낮췄고 그 결과 상당한 손실에 직면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석유, 육류 가공, 설탕, 석탄, 담배 산업 등에서 기업들은 사업연합인 트러스트(trust)를 형성해 가격을 올렸다. 이것이 사회 문제가 되자 미 의회는 1890년 거래를 제약하는 계약, 연대, 공모 등을 금지하는 셔먼법을 제정했고, 반트러스트(antitrust)가 반독점을 지칭하는 계기가 됐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경쟁을 피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에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가 발생하곤 한다. 이 중 담합은 경쟁법에서 최악의 행위로 여겨진다. 특히 경쟁 기업 간 가격이나 물량을 직접적으로 합의하는 경성담합은 소비자 피해가 자명하므로 혹시 행위에 친경쟁적 요소나 효율적 측면이 있는지 합리적으로 따져 보지도 않고 무조건 위법으로 처리한다. 경쟁법에 저촉되는 다양한 경쟁 제한 행위 중 당연 위법(per se illegal)에 해당하는 행위는 담합이 거의 유일하다.

문제는 담합이 주로 은밀히 이뤄져 적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담합으로 의심할 만한 정황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경쟁 기업들이 비슷한 시기에 가격을 올리면 담합을 의심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가격 동조화는 담합 말고도 공통적인 생산 비용 상승과 같은 다른 여러 요인의 결과일 수 있다. 또한 한 기업이 담합과 관계없이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들의 수요가 경쟁 기업 제품으로 몰리면서 경쟁 기업도 가격을 올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과가 될 수 있다. 가격 동조화는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나는 일이다.

결국 담합을 적발하고 처벌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합의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이 증거를 외부자가 찾기는 쉽지 않으므로 내부 고발을 유도하는 자진 신고자 감면 제도를 만들어, 담합을 가장 먼저 자진 신고한 기업에는 과징금을 면제해 주고 있다. 이에 더해 합의에 대한 증거는 없고 담합에 필요한 정보교환에 대한 증거만 있더라도 이를 합의 증거로 간주하겠다는 것이 2020년 공정거래법 개정 내용이고 이번 시중은행 LTV 담합 의혹의 쟁점이다.

정보교환만으로 합의를 추론한다고 해서 담합으로 규제하려는 이유는 담합이 경쟁을 제한해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서도 은행들의 LTV 정보교환 자체가 아니라 정보교환이 어떻게 경쟁을 제한했고 그 결과 소비자에게 피해를 줬는가가 핵심이다.

미국의 트러스트 사례와 같이 치열한 경쟁이 있어야 이를 피하려고 은행들이 담합을 했을 텐데, 부동산 자금 대출 시장에서 관치로 인해 안정적인 이득을 취하고 있는 시중은행 간에 과연 담합을 통해 제한할 유의미한 경쟁이 있었는가가 의문이 될 수 있다. 비근한 예로 작년에도 시장금리가 하락하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의 구두 개입으로 대출금리가 올라가고 예대 금리차만 커져 시중은행들은 사상 최대의 이익을 누렸고 지금도 누리고 있다.

정부가 기업들의 담합을 철저히 조사하고 규제하는 것은 필요하다. 이번 시중은행 LTV 담합 의혹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담합 규제의 목적이 경쟁 보호에 있음을 상기할 때 정부가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해 오히려 경쟁을 제한하거나 혹은 담합을 유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부의 부적절한 규제로 시장에 경쟁이 없어지면 적발해야 할 담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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