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80년 전 얄타협정과 尹 탄핵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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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80년 전 얄타협정과 尹 탄핵 심판

지금부터 꼭 80년 전인 1945년 2월에 크리미아의 얄타에서 미국, 영국, 소비에트 러시아 등 세 강대국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회담에서 러시아는 3개월 안에 일본을 공격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대가로 러시아는 동부 유럽에서 영토를 크게 확장하고 동아시아에선 러·일전쟁으로 잃었던 영토와 이권을 되찾기로 했다. ‘얄타 협정’이라 불리게 된 이런 합의는 워낙 러시아에 유리해서, 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뒤 루스벨트 대통령과 처칠 수상은 그 내용을 자세하게 발표하지 않고 얼버무렸다.

두 달 뒤 국제연합(UN) 창립 총회가 열린 미국 샌프랜시스코에서 이승만은 기자회견을 열고 “얄타 회담에서 세 강대국이 조선을 러시아에 넘기는 비밀 협약을 맺었다”고 폭로했다. 그는 미국 기자 에밀 고브로가 입수한 비밀문서를 근거로 삼아 그렇게 대담한 일을 벌인 것이었다. 그의 폭로에 온 세계가 경악했고, 미국 정부는 난처해졌다. 마침내 미국 국무부는 이승만의 폭로가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하며 조선의 독립을 약속한 ‘카이로 선언’은 유효하다고 확인했다. 바로 그런 미국의 반응이 이승만이 노린 목표였다.

미국 국무부의 확인을 이행하기 위해 미군은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러시아군과 협의해서 북위 38도선 이남의 한반도를 점령했다. 덕분에 한반도를 자신의 온전한 통제 아래 두려고 했던 스탈린의 의도는 좌절되었고, 대한민국이 세워지게 되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바탕을 마련한 것은 이승만의 여러 업적 가운데 으뜸이다.

여기서 물음 하나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왜 얄타 회담에서 노련한 루스벨트 대통령과 처칠 수상이 그렇게 스탈린에게 당할 수밖에 없었나?” 이 흥미로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길 수밖에 없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러시아 비밀 경찰이 미국과 영국의 대표들이 묵었던 숙소를 도청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아침마다 스탈린은 미국과 영국의 협상 전략을 보고받아 대응책을 마련하고서 협상에 임했다. 결국 서방의 두 지도자들은 스탈린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하고도 ‘스탈린은 믿을 만하고 합리적인 사람이다’라는 평가를 공유했다.

며칠 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변론에서 헌법재판소가 원고 국회와 피고 대통령이 상대편 증인에 대한 반대신문 사항을 하루 전에 제출하도록 했다. 윤 대통령 측은 이내 반발했다. 반대신문 사항을 미리 제출하도록 하는 것은 이전에 없던 일이며, 이런 조치는 무슨 질문을 받을지 알려줘 상대가 대비할 수 있게 할 것이란 얘기다.

헌재의 조치는 80년 전 얄타에서 일어난 참사를 서울에서 재현할 것이다. 전자는 협상이고 후자는 재판이지만, 본질은 같다. 한쪽 당사자만이 중요한 정보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나오는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런 ‘정보의 비대칭’은 워낙 중요한 문제여서 정보경제학의 실질적 핵심이다. 그동안 헌재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유난히 문제적 행태를 보여왔다.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재판인데, 절차를 따라 신중하게 진행하지 않고 쫓기듯 재판을 진행해왔다. 명시적 규정을 어기면서,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들에 대한 수사 기록까지 증거로 삼았다. 여러 증인을 한꺼번에 불러내고 주요 증인들에 대한 반대 신문을 제한해 깊이 있는 신문을 어렵게 만들었다. 급기야, 신문 시한을 설정하고 초시계로 재는 진풍경까지 나왔다.

이런 행태는 모든 재판의 궁극적 목적인 정의의 실현을 방해한다. 정의는 추상적 가치인지라, 법은 평등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가치를 추구한다. 그러나 평등은 어떤 특질을 기준으로 삼느냐 하는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법철학자들은 평등은 ‘비자의(nonarbitrariness)’에 의해 보완돼야 한다고 본다. 자의적 행태를 보여온 헌재 재판관들은 바로 이 점에서 준엄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

헌재의 여러 자의적 행태들 가운데, 증인에 대한 반대신문 사항의 사전 제출 강요는 특히 문제적이다. 그것은 재판의 목적을 훼손할 뿐 아니라 역사를 왜곡한다. 이번 대통령 탄핵 사건은 중대한 사건인지라, 충분한 반대신문을 통해서 최소한의 진실이라도 밝혀져야 우리 역사가 덜 왜곡된다. 역사가 한번 잘못 씌어지면, 우리 후대들은 두고두고 잘못된 교훈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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