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투쟁’의 시대 [임용한의 전쟁사]〈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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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히틀러는 ‘뮌헨 폭동’에 실패해 란츠베르크 교도소에 수감됐다. 말이 교도소지 5년형에 실제로는 1년 남짓 복역했다. 그는 강이 내려다보이는 호텔 같은 독방에서 비서까지 부리면서 살았다. 자서전이자 정치선전서인 ‘나의 투쟁’이 이곳에서 나왔다. 이후 히틀러의 인기는 치솟았다. 1930년 나치당은 독일 제2당이 됐다.

히틀러는 어떤 논리로 사람들을 유혹했을까? 세계의 모든 문제는 유대인이 일으켰다는 황당한 논리도 있지만, ‘나의 투쟁’은 아주 평범한 논리로 유혹을 시작한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국회의원은 제멋대로 법을 만들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 국가가 생존하려면 일정 크기의 영토와 인구를 가져야 한다, 대중은 천재의 독창적 행동에 늘 반대한다, 국가는 훌륭한 문화를 국민에게 보급할 의무가 있다….

이런 말을 하거나 공감한다고 해서 파시스트인 것은 아니고, 파시스트가 된다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세계 경제가 불황에 빠지고, 국가와 국가, 강자와 약자 간에 힘과 맹목적 정의가 정당화되는 세상이 되자 대중은 이런 소박하고 상식적인 바람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극단적 방법론을 선택하게 됐다. 히틀러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북을 쳐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사람이다. 민족은 독재자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다. 우리의 임무는 그들에게 독재자를 주는 것이다.”

우리는 히틀러의 집권이 가져온 결과인 제2차 세계대전, 광기, 학살에 대해 알고 있다. 열매는 핏빛이지만 뿌리의 성분 90%는 대중의 평범한 생각이었다. 그 평범함이 이상기후를 만나 괴물로 진화했다. 지금 세계는 1920년대와 너무나 유사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념을 떠나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지도력을 요구한다. 1920년대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랐다. 우리는 알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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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한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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