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대선) 경선, 지지율에 취해 과도하게 문재인 (당시) 후보님을 비판했다”며 “정치적으로 가장 아픈 부분은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사랑하는 분들의 마음을 온전히 안지 못한 것”이라고 반성했다. 대선이 코앞인데도 ‘집토끼’ 분열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었다. “제게 여러분이 아픈 손가락이듯 여러분도 저를 아픈 손가락으로 받아주시면 좋겠다”고 이재명은 애타게 호소했었다.
결과는 대선 패배였다. 당권은 장악했다. 그 뒤 이재명이 친문세력까지 아픈 손가락으로 받아들였는지는, 모두가 안다. 이제는 잊고 싶을 듯한 그 아픈 손가락 소리가 뜻밖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 입에서 튀어나왔다. 10일자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문재인은 공식 인터뷰를 마친 다음 자연스러운 대화 과정에서 이재명 아닌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를 “가장 아픈 손가락”이라며 “한없이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했다.
전후 맥락은 이렇다. 문재인은 대통령 재임 중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계엄과 탄핵사태가 초래돼 국민께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윤석열이 자신을 사심 없이 총장으로 추천해준 조국에 대해 앞으로 행해질 검찰개혁에 대한 보복으로 수사해 조국 가족까지 풍비박산 났다는 거다.
개인적 안쓰러움은 이해할 수 있다. 2019년 12월 31일 조국이 11개 혐의로 기소된 다음 2020년 신년기자회견에서 문재인은 조국에 “마음의 빚을 졌다”고 했다. 2022년 초 퇴임 직전 대담에서도 그는 “마음의 빚이 있다고 해서 논란이 됐는데 지금도 변함이 없느냐”는 물음에 “안타까운 마음이 없을 수는 없다”고 했다. 잘못한 게 있어 벌을 받는 것이 맞는다 해도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돼 그런 상황에 이르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한겨레 인터뷰에 단초가 있다. 그대로 인용한다.
― 윤석열 검찰총장이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길로 가고 있구나, 기대가 어긋났구나 하는 생각은 언제부터 하시게 됐습니까?
“조국 수석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을 때, 조국 후보자 일가에 대한 수사는 명백히 조국 수석이 주도했던 검찰개혁 또 앞으로 법무부 장관이 된다면 더 강도 높게 행해질 검찰개혁에 대한 보복이고 발목잡기였거든요. 그때 이제 처음 안 거죠.”
마치 문재인은 윤석열의 조국 수사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투다. 과연 그럴까. 2024년 3월 함성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이 출간한 저서 ‘위기의 대통령’을 보면, 믿기 어렵다.
이 책에 따르면, 2019년 9월 6일 금요일 오후 문재인은 청와대에서 윤석열과 독대해 만찬을 함께 했다. 이미 조국 딸의 입시 특혜, 사모펀드 의혹 등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었고 윤석열은 수사에 착수한 상태였다. 함성득은 꼼꼼한 ‘취재’를 통해 대통령과 윤석열의 대화를 마치 영화처럼 묘사했다(물론 이 책은 맞느냐? 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고소고발의 대가인 대통령실을 비롯해 입때껏 어느 쪽에서도 고소고발 당한 바 없다).
윤석열의 설명을 다 들은 대통령은 “그럼 조국 수석이 위선자입니까?”라고 물었고 윤석열은 “저의 상식으로는 조국이 잘 이해가 안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또한 윤석열은 “조국의 부인 정경심을 기소하겠다”고 보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꼭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고 윤석열은 “법리상 그렇게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이 대화가 품고 있는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대화의 행간을 제대로 읽으면 당시 법조인 출신 대통령의 의중이 보인다. 검찰총장은 조국을 이해하지 못하겠고 부인 정경심을 기소하겠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에 대한 이해를 구하지 않았고 정경심에 대한 기소를 막지도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질문에 대한 윤석열의 대답을 묵시적으로 용인했다. 윤석열의 의사를 존중했고 사실상 승인한 것이다…(중략)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단독 만남이었다.(162~163쪽).
대통령과 검찰총장의 독대, 더구나 조국의 거취를 둘러싼 독대는 극비사항이었다. 그럼에도 임명장에 잉크도 안 마른 윤석열이 감히 대통령 독대를 요구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물론 검찰도, 청와대도 부인했지만 엉뚱하게도 김건희와 최재영의 카톡이 노출되면서 독대가 확인됐다.
● 조국을 구하려 친문이 뛰었다
기이한 것은 문재인의 이중성이다. ‘위기의 대통령’에 따르면 문재인은 조국 수사를 묵인했고 정경심 기소 역시 승인했다. 윤석열과 독대 후엔 긴급 참모 회의를 거쳐 조국에게 자진 사퇴를 통보까지 했다. 사실 조국은 부담스러운 존재라 할 수 있다. 2년 넘게 민정수석을 하며 조국은 문재인 딸과 사위문제 등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사흘 만에 법무부 장관에 임명할 수밖에 없었다. 친문세력이 미친 듯 구명운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장관 임명 뒤 나라는 두 쪽이 났다. 한쪽에선 장관 사퇴 시위로, 반대쪽에선 ‘조국 수호’와 ‘검찰 개혁’ 시위로 문재인 지지율은 내리막길로 치달았다. 결국 조국은 장관에서 물러났고, 11개 혐의로 기소됐다. 진중권은 ‘좌파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책에서 “조국 사태로 진보는 파국을 맞았다”고 선언했다. 그런데도 2020년 문재인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조국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했다. 한없이 착한 것인지, 진짜 빚을 진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때문이다.
● 조국이 입을 열면, 문재인이 위험하다
대통령 재임 중이던 2018년 문재인은 울산시장 선거에 30년 절친이자 민주당 후보였던 송철호를 당선시키기 위해 청와대를 조직적으로 개입시키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윤석열 검찰은 2020년 1월 송철호 백원우 민정비서관 등 13명을 기소하면서도 민정수석 조국, 비서실장 임종석은 기소하지 않았다.
송철호, 백원우 등 주요인물은 1심에서 유죄가 나왔다. 210여 쪽 분량의 판결문에선 문재인이 14차례나 언급됐다. 그런데 4일 2심에선 무죄로 뒤집히고 말았다. 재판도 유독 질질 끌었는데 판결문도 특이하다. “공소사실이 유죄라는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증거가 불충분해 무죄라는 거다.
서울중앙지검은 조국을 재수사하고 있다. 잊을만하면 문재인이 조국에 대한 애정을 표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조국이 입을 열면, 문재인이 위험해지는 것이다.
● 이재명을 어찌 믿나…조국아 조국아
민주당 일각에선 왜 이제서야, 그러니까 윤석열 대통령 파면이 코앞인 지금에야 왜 윤 정권 탄생 책임을 사과하느냐고 문재인을 비난한다. 문재인으로선 숨죽이고 있을 수밖에 없다. 검찰의 미친 칼춤이 퇴임 대통령한테 날아들면 어쩔 것인가.
하지만 윤석열은 자신을 검찰총장에 발탁해준 대통령에게 인간적 의리를 지키고 싶어했다는 게 함성득의 전언이다(그런데 문득 이것도 거짓말이면 어쩌지 싶다. 요즘 헌법재판소 탄핵 변론을 보니 윤석열 본인은 참말과 거짓말을 구분 못하고 살아온 사람 같다).
조기 대선이 열리고 만에 하나 이재명 대통령이 탄생할 경우, 조국을 사면 복권해줄 사람은 이재명밖에 없다. 나이로 보나, 미모로 보나, 국민 건망증으로 보나, 조국은 아직 짱짱한 PK(부산경남)의 정치자산이고 문재인의 후계자이며 입도 무거운 알리바이다. 그래서 문재인은 “조국이 내겐 아픈 손가락”이라고 동네방네 외치는 것이다.
* 사족 … 앞으로 검찰이 어디로 줄 설 것인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볼 일이다. 조국을 재수사 중인 서울지검을 비롯해 명태균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창원지검 등이 살아있는 권력, 죽은 듯하지만 살아날 권력 할 것 없이 철저히 수사한다면 ‘정치검찰’의 수치를 벗고 국민의 검찰로 부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법원에서 울산시장 사건이 뒤집힐 지도 기대해 보시길.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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