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2024년 총선과정 167개국 중 공동 2위… 그래도 ‘부정선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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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부정선거 음모론 유튜브를 처음 봤다.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일 국회에서 공병호TV를 틀었다. 2020년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 공천관리위원장을 잠깐 했다 물러난 공병호가 “가짜투표지를 집어넣어 국민들에게 사기를 친 것이 김용빈(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과 노태악(위원장)이 해온 짓거리”라고 주장했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끼워넣기’ 방식의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공병호 씨. 유튜브 캡처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끼워넣기’ 방식의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공병호 씨. 유튜브 캡처
“서울 같은 경우는 세 장당 한 장을 집어넣는다. 진짜 진짜 진짜 가짜 표, 진짜 진짜 진짜 가짜 표. 모든 이런 가짜는 다 민주당 후보에게만 더해지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좀 유치찬란하다. 고도의 해킹이라든가 원격조작 시스템이라면 또 모른다. 대명천지에 여야 참관인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는데 누가 어떻게 감히 가짜 표를 집어넣는단 말인가.

윤석열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도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12·3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1월 15일 체포된 직후 ‘국민께 드리는 글’에서 “투개표 부정과 여론조사 조작을 연결시키는 부정선거 시스템은, 이를시도하고 추진하려는 정치세력의 국제적 연대와 협력이 필요함을 보여준다”며 “이 상황이 전시, 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입니까? 아닙니까?” 물었다.

● 부정선거 때문에 국가비상사태라고?

그런데 어쩌나.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 2024’는 윤석열 계엄 탓에 167개국 중 32위로 전년보다 10계단 추락했지만 선거과정만은 10점 만점에 9.58점, 공동 2위다. 지난달 말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산하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내용을 다시 들여다본 결과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 순위. 비상계엄 선포 사태로 ‘결함 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로 내려왔으나 선거 과정 및 다원주의 측면은 2위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한국보다 총점에서 4계단 위에 있는 미국의 선거 점수는 3위 수준이다. 출처 EIU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 순위. 비상계엄 선포 사태로 ‘결함 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로 내려왔으나 선거 과정 및 다원주의 측면은 2위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한국보다 총점에서 4계단 위에 있는 미국의 선거 점수는 3위 수준이다. 출처 EIU
EIU는 민주주의 지수를 ①선거과정과 다원주의 ②정부기능 ③정치참여 ④정치문화 ⑤시민의 자유 등 다섯개 지표에 따라 10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긴 뒤 평균치를 내 순위를 발표한다. 8점을 넘으면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 6~8점은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 4~6점은 ‘하이브리드 국가’, 4점 미만은 ‘권위주의 체제’다. 우리나라가 2020~2023년 완전한 민주주의에 속했다가 2024년 윤석열의 비상계엄으로 결함 있는 민주국가로 굴러 떨어진 것은 이미 보도됐다. 그러나 선거과정(과 다원주의)만은 부러울 것 없는 완전민주다. 10점 만점이 17개국(대만 포함)이나 돼서 그렇지, 두 번째로 높은 9.58점이었다. 우리나라와 스웨덴 스위스 네덜란드 독일 일본 영국 등 26개국이 동점, 공동 2위였다. 지난해 대선을 치른 미국은 9.17점으로 공동 3위에 그쳤다. ● 공동 2위 26개국이 전부 부정 선거 시스템?

윤석열은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대국민담화에선 부정선거의 ‘부’자도 입에 담지 않았다. 4차 담화, 즉 12일에야 “비상계엄이라는 엄중한 결단을 내리기까지 그동안 직접 차마 밝히지 못했던 더 심각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며 “국정원 직원이 (선관위)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방화벽도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어마무시한 발언을 했다. 그러나 묻고 싶다. 만일 그가 1월 15일 주장한대로 “총체적인 부정 선거 시스템이 가동”됐다면 EIU가 9.58점을 주는 것이 가능했겠나.

계엄선포 9일 후인 지난해 12월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비상계엄 선포 정당성을 주장하는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계엄선포 9일 후인 지난해 12월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비상계엄 선포 정당성을 주장하는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1월 말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윤석열 측 변호인 은 “국내외 주권 침탈 세력에 의해 거대한 선거부정 의혹이 있었으나 선관위나 법원, 수사기관을 통해 제도적으로 해결되지 못해 국가 비상 상황이 초래됐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EIU가 우리나라를 스웨덴 독일과 같은 공동 2위에 올려놓았을 리 없다. 동점이니만치 다른 25개국도 우리처럼 거대한 선거부정 의혹이 있고, 총체적 부정 선거 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아니면 EIU가 멍청한 국제기구든지. 과연 그런가.

5개 민주 지표 가운데 우리나라가 그래도 제일 점수 높은 항목이 ①선거과정과 다원주의였다. 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한지(언론자유와 표현자유도 중요하다), 선거 뒤 패자의 승복과 질서 있는 정권 이양이 진행되는지가 평가 내용이다. 한국은 2021~2024년 그러니까 문재인 정권 5년차부터 윤석열 계엄까지 9.58점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선거과정만은 계속 세계에서 두 번째로 공정하게 치뤄졌다는 얘기다. 2020년 선거과정은 9.17점으로 좀 떨어졌지만 그래도 2024년 미국과 같은 수준이었다. 윤석열 주장대로 결코 부정선거가 자행됐다고 볼 순 없다는 말씀이다.

● 윤석열 “선관위 군 투입 지시” 자백했다

그가 국회 탄핵소추 사유를 전면 부인하면서 유일하게 인정한 것이 있다. 선관위에 군 병력 투입을 지시한 사실이다. 윤석열은 2월4일 탄핵심판 5차 변론에서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의 증언이 끝난 뒤 “잠깐 말씀드려도 되겠냐”며 굳이 발언 기회를 얻어 밝혔다. 비상계엄 당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군 병력을 보내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헌법기관을 불법 점거하도록 지휘 감독했다는 엄청난 자백이 아닐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해 12월 3일 계엄군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들어가 서버실을 촬영하는 모습.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때 선관위에 군 병력을 투입하라고 자신이 직접 지시했다고 발언했다. 동아일보DB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해 12월 3일 계엄군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들어가 서버실을 촬영하는 모습.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때 선관위에 군 병력을 투입하라고 자신이 직접 지시했다고 발언했다. 동아일보DB
계엄법은 비상계엄 하에서 계엄사령관이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한다고 규정해 놨다. 그러나 선관위 같은 헌법기관에 대해선 손 댈 수 없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으로, 선관위에 군이 진입한 것 자체가 명백히 헌법 위반이며 대통령이 그런 행위를 지시했다면 탄핵 사유로도 볼 수 있다”고 작년 12월 5일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진작 밝힌 바 있다.

윤석열도 위헌성을 알아챘는지 최후변론에서 부정선거론과 선관위 군 투입 지시에 대해 ‘매우 약해진’ 발언을 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선관위 일부 점검 결과 심각한 보안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에 전산시스템 스크린 차원에서 소규모 병력을 보낸 것”이라고 꼬리를 내린 것이다. 고작 시스템 점검을 위해 계엄을 때렸다고? 선관위 사무총장이 대학동기인데도?

● 공천개입 의혹의 김건희와 함께 복귀시킬 건가

‘가족회사’를 자처했다는 선관위의 특혜채용과 타락, ‘소쿠리 투표’ 같은 관리 부실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노태악 위원장이 5일 대국민사과문을 내고 “선관위 조직 운영에 대한 불신이 선거과정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에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늦었지만 당연하다. 윤석열이 절대 임명하지 않았던 대통령실 특별감찰관 아닌 ‘특별감사관’이라도 설치해 선관위는 모든 의혹을 털고 거듭나야 할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2024’ 표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2024’ 표지
그러나 부정선거론자들이 도입을 주장하는 ‘수개표’는 우리가 이미 실시하고 있는 제도다. 사람이 먼저 수검표하고 전자 계수기로 결과를 재확인한다. 무엇보다 지금의 부정선거론은 박근혜-문재인 후보가 맞붙은 2012년 18대 대선에서 촉발됐음을 지적하고 싶다.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졌다고 믿은 문재인 측은 개표 부정에서 이유를 찾으려 했고, 김어준은 2017년 영화 ‘더 플랜’으로 개표 부정 의혹에 불을 질렀다.

거기서 그쳤으면 좋았을 것을, 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한 보수층 일각에선 부정선거론에 빠져들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취임 때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선서했던 대통령이 위헌적 계엄을 선포한 건 나라망신이다. 유수한 국제기구 EIU가 세계 2위로 평가한 선거과정을 못 믿고 선관위에 군을 투입해 대한민국을 ‘결함 있는 민주국가’로 추락시켰다. 서둘러 나라를 뒤엎어야 하는 ‘진짜 이유’를 감추려 부정선거를 끌어들인 게 아닌지 의문이다. 그런 윤석열을 공천 개입 의혹이 짙은 부인 김건희와 함께 제왕적 자리로 복귀시켜도 되는지, “이재명은 안 된다”는 접어놓고 따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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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니스트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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