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나온 이재명’ 같은 신뢰 리스크
“윤석열보다 낫다”며 넘어갈 수도 있다
문재인 정권 몰락은 조국 고집에서 시작
이 대통령, 그래도 총리 임명 강행할 텐가
이재명 대통령은 김민석 총리 후보자를 지명하며 “국정 전반에 대한 통찰력이 매우 높은 분”이라고 소개했다. 김 후보자(이하 경칭 생략)가 24일 인사 청문회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묻는 질문에 “20∼30(%)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한 걸 보면 좀 의심스럽긴 하다. 올 1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집행하면 국가채무 비율은 무려 48.4%다.이 대통령의 의중을 꿰뚫는 김민석의 통찰력은 상당해 보인다. 대통령이 듣고 싶은 말을 입안의 혀처럼 알아서, 미리 대신 해주는 통찰력 말이다.
작년 8월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김용현 대통령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으로 지명했을 때 제일 먼저 계엄 의혹을 제기한 사람이 김민석이었다. 하지만 4월 말 그가 낸 책 ‘이재명에 관하여’에선 이 대통령에게 공을 돌렸다. 2024년 9월 1일 여야 대표 회담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계엄 가능성을 언급했다며 ‘내란 극복 과정에서 빛을 발한 리더십’을 극찬한 것이다.
‘김대중(DJ)의 사람’을 자부하는 그가 DJ와 이재명의 공통점으로 고난의 개인사를 거쳐 국난 극복을 해내는 숙명을 꼽은 것도 예사롭지 않다. 이 대통령을 DJ의 반열에 올려놓는 서사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대학 시절 어려운 친구들은 학생운동에 참여하지 못했다”며 “이재명은 사시 합격 후 시민운동을 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고 쓴 ‘비운동권의 약속’도 감동적이다. 어쩌면 소년공이자 비운동권 출신 이 대통령에게 김민석은 ‘서울대 나온 이재명’처럼 여겨졌을지 모른다.1996년 32세 최연소 의원으로 등원한 김민석은 그러나 두 번의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2002년부터 18년간 정치판을 떠나야 했다. 운동권 스타라는 선민의식 때문인지 그는 제힘으로 돈 벌어본 경험이 없다. 보통 사람 같으면 뭐라도 해서 가족을 먹여 살렸을 텐데 김민석은 ‘가족처럼 지내는’ 강모 씨로부터(2012년 저서 ‘3승’) 배추농사 투자비로 월 450만 원씩 받으면서 미국 유학을 했다고 24일 청문회에서 밝혔다.
의원 세비에 비해 과다한 지출 의혹은 말끔히 해소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25일 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수상한 자금이라고 하는 대부분은 저에 대한 표적 사정에서 시작됐다”며 “정치 검사들의 조작질이라는 표현밖에 쓸 수가 없다”고 오만하고 날 선 반응을 보였다.
그의 ‘아빠 찬스’ 의혹은 더 놀랍다.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비리 문제가 불거졌음에도 4년 뒤 그가 아들 고교 동아리에서 만든 것과 같은 법안을 국회 발의했다는 데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물론 김민석은 아들 대학입시에 활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아들을 위해 헌법기관까지 동원했다는 것은 국정농단이라 해도 할 말 없을 판이다. 국민의힘은 김민석의 재산 의혹과 아빠 찬스를 들어 조국 판박이라고 지적했다. 나는 국민 눈높이와 동떨어진 김민석의 인식이 ‘조국 사태’와 닮았다고 본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586 정치인, 지지자들은 조국을 싸고돌며 검찰 수사를 ‘검찰 쿠데타’라고 비난했다. 지금도 윤석열이 난데없는 비상계엄으로 파면되는 바람에 김민석 의혹쯤은 “윤석열보다 낫다” “국힘이 뭔 자격으로 비판이냐”며 넘어가려는 모양새다. 조국 때는 분노해 거리로 뛰쳐나왔던 시민들도 무관심 무감각 무기력해진 분위기다.조국 사태의 본질은 상식 파괴에 대한 국민적 분노였다. 채진원 경희대 교수가 최근 저서 ‘조국 사태로 본 586 정치인의 세계관’에서 지적한 바다. 정치권과 달리 진영논리에 빠지지 않고 옳고 그름을 판단했던 다수 국민들이 문재인 정권을 갈아 치웠다. 그러나 조국 사태로 상징되는 운동권 출신, 아니 윤석열 같은 엘리트의 내로남불은 좌파나 우파나 여전히 그대로다.
이제 이 대통령이 선택할 때다. ‘조국 시즌2’ 김민석을 총리로 임명한다면, 이재명 정부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크게 꺾일 것이다. 이 대통령의 ‘신뢰 리스크’ 뺨치는 김민석의 신뢰 리스크에 한국의 리스크도 커질 수 있다. 인사 검증이나 청문회는 당연히 우스워진다. 수억 원대의 출판기념회는 물론 ‘스폰서 정치인’이 당당해지고 부패와 정경유착이 판칠 수도 있다. ‘악의 연대’ ‘뻔뻔함의 연대’로 돈 때문에 권력을 좇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만일 김민석을 버리고 간다면, 국민은 이 대통령을 다시 볼 것이다. 공직 기강은 번쩍 살아나고 나라에 새 기운이 넘칠 것이다. 매번 참모 그룹을 물갈이해 충성 경쟁을 시켰던 이 대통령이다. 김민석 아니어도 유능한 사람 많다. 이재명 정부의 명운이 이번 총리 임명에 걸렸다. 이 대통령은 어떤 길을 갈 것인가.
김순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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