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재호]양자역학 100주년, 한국의 양자 미래를 준비할 때

3 weeks ago 4

정재호 연세대 양자사업단장·의과학 교수

정재호 연세대 양자사업단장·의과학 교수
올 해는 양자역학이 태동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1925년 독일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행렬역학을 발표하며 전자, 원자, 분자의 거동을 설명하는 현대 물리학의 근간인 양자역학의 기반이 마련됐다. 이후 슈뢰딩거, 디랙, 폰 노이만 등의 연구를 통해 양자역학은 현대 과학과 기술 발전의 핵심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반도체, 레이저, 원자력, MRI 그리고 최근의 양자컴퓨팅까지, 양자역학은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첨단 기술의 기반이 되고 있다. UN은 2025년을 ‘세계양자과학기술의 해’로 정하고 양자과학과 기술이 인류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중요성을 전 세계적으로 조명하며 각국이 양자과학 육성 및 기술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강조하고 있다.

전세계는 지금 ‘양자 2.0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양자역학이 실험실의 이론을 넘어 양자컴퓨팅, 양자암호/통신, 양자센서 기술이 현실화되면서 산업과 경제 구조를 변화시키고 있다. 딜로이트의 분석에 따르면 실제로 코로나 팬데익 이전 대비 모든 산업기술분야의 글로벌 투자가 38% 감소했으나 양자컴퓨팅 분야는 28% 정도 감소하여 상대적으로 기술 패권을 노리는 많은 국가들의 투자는 민-관 분야에서 감소가 크지 않았다. 실제로 최근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국들은 양자기술 개발에 천문학적 투자를 단행하며 미래 국가 경쟁력으로서 양자기술의 패권을 주도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도 글로벌 양자경제 중심국가로 도약이라는 비전을 수립하고 최근 국가양자과학기술 전략이 제시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양자기술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양자 생태계 구축을 위한 과제를 알아보고자 한다.

한국 양자 기술 현황과 문제점: 우리 생태계의 현주소

한국은 반도체, 정보통신, 디스플레이 등 산업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양자기술 관련 양자컴퓨팅, 암호/통신, 센싱 분야에서는 아직 글로벌 선두권과의 격차가 존재한다. 정부 주도로 연구기관, 기업들이 양자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연구개발을 확대하고 있으나, 여전히 투자 규모나 기술개발, 활용 등에서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크게 다음과 같은 세가지 이유가 우리 생태계 구축 및 활성화에 장애가 되고 있다.

①통합적 연구 역량 부족 : 국내 주요 연구기관과 대학들은 양자컴퓨팅 하드웨어, 양자암호통신, 양자센서 등의 연구를 진행 중이나, 양자관련 기초과학과 응용 연구가 분리되어 있어 통합적인 연구개발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아직 전국적인 양자기술 분야 인력에 대한 실태 파악이나 체계적인 양성 계획이 가시화되지 않았으며 특히 연구개발을 주도할 박사급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

②산업계 관심 부족 및 왜곡된 시장 기대감 : 삼성전자, SK텔레콤, LG 등이 양자기술 관련 연구에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IBM, 구글, 중국의 퀀텀씨텍 등 글로벌 기업들과 비교하면 연구개발 규모와 성과가 제한적이다. 특히 최근 생성형 AI의 보편화가 가속화되며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같은 대기업들은 반도체 중심의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어, 관련 대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양자컴퓨팅이나 양자통신 분야로의 투자가 미흡한 실정이다. 또한 일부 스타트업 및 초기 성장단계 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과도한 기대와 실질적 기술력과의 괴리는 시장을 과열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궁극적으로 양자기술 연구 인력 및 R&D 환경을 왜곡시킬 수 있다.

③정부 지원 한계 : 미국, 중국, EU, 일본 등은 양자기술에 연간 수천억 원 이상을 투자하고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 정부의 지원은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다. 한국의 양자 생태계는 아직 초기 단계로,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전략적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의 양자 생태계 구축을 위한 전략

①기초 연구 강화 및 인재 양성 : 양자기술 발전의 근간은 기초과학 연구다. 대학 및 연구소에서 양자역학, 양자정보과학, 양자재료 분야를 심도 있게 연구할 수 있도록 국가의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연구 지원이 필요하다. 다행히 정부에서 양자정보과학 인적기반 조성 사업을 통해 양자대학원을 신설한 것은 양자인재 양성을 위한 긍정적인 신호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양자컴퓨팅 및 양자기술 관련 대학원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해외 유수 대학 및 연구기관과 협력하여 글로벌 연구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②연구개발 투자 확대 및 인프라 구축 :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민간 기업과 대학의 공동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 양자 연구개발을 위한 테스트베드 및 연구소를 설립하고, 학계와 산업계가 협업할 수 있는 플랫폼을 조성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가 전통적으로 강한 ICT 분야의 축적된 역량을 기반으로 양자알고리즘 및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하드웨어가 발전하더라도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의 발전 없이는 실질적인 응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③산학연계 및 기업 주도의 연구개발 촉진 : 양자기술은 결국 산업화되어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현재 국내 산업계는 양자에 대한 수요는 있으나 정확한 응용 분야나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술개발 및 활용의 로드맵은 부재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대학의 혁신을 산업계 접목시키고 생산성 향상 및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국내 대학 및 연구기관에 양자 알고리즘 연구센터 설립을 지원하고, 양자수요가 있는 기업과 연계하여 실용적인 양자 소프트웨어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 이를 통해 산학 융합형 인재 양성과 개발 생태계가 조성되고 활성화 될 수 있다.

④장기적인 국가 주도의 양자기술 전략 수립 : 미국은 ‘National Quantum Initiative Act’를 통해 양자기술 발전을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도 ‘Quantum Flagship’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한국도 이에 대응하여 정부 주도 퀀텀 이니셔티브를 수립하였다. 이러한 국가정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려면 양자컴퓨팅, 양자통신, 양자센서 분야별 국가 전략 및 연구개발 목표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양자기술 관련 주요 대학 및 연구소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양자기술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연구 투자 대비 성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또한 양자컴퓨터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관련 국가출연연과 대학, 산업계가 융합된 기술개발 생태계 및 테스트베드를 구축하여 연구개발 인프라를 조성해야 한다.

⑤국제 협력 및 글로벌 시장 진출 : 양자기술은 글로벌 협력이 필수적인 분야로, 미국, EU, 중국, 일본 등 주요국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국제 공동 연구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해외의 선진 기술을 국내로 도입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최근 정부가 글로벌 양자기술 공동 연구, 인력 교류 및 연구 네트워크 확보를 위한 Quantum University Alliance (QUA) 구축 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하였다. 이를 통해 국내 대학 및 연구소에서 양자역학, 양자정보과학, 양자공학 관련 교육과정을 확대하고, 해외 연구기관과 협력하여 글로벌 수준의 연구 경험을 쌓을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해외 양자기술 기업 및 연구소와 협력을 통해 한국의 기업들의 기술 경쟁력 확보 및 글로벌 시장 진출의 기회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의 미래, 모두를 위한 양자기술 혁신

양자역학이 태동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인류는 양자기술을 통해 또 다른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이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전략적 접근과 과감한 투자, 연구개발 및 인재 양성이 필수적이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AI, 5G와 같은 첨단 기술에서 경쟁력을 갖춘 것처럼, 양자기술 분야에서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정부, 대학, 기업, 학계가 모두 협력하여 한국의 양자 생태계를 구축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때이다.

대학은 양자문해력을 높이기 위한 교육 및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산학 협력을 통해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중요한 난제인 에너지, 기후, 바이오헬스 분야에서 성공사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신약개발과 같이 국가적 보건안보에 중요한 이슈에서 현재 NISQ 급의 양자컴퓨터로도 기존 슈퍼컴 활용 인공지능 신약개발보다 우월한 성과를 창출할 수 있음이 입증되고 있다. 국가 미래 전략 산업인 첨단바이오 분야에서 3대 게임체인저인 AI와 양자기술을 활용하여 글로벌 경쟁력을 갖는 신약개발의 가능성을 제시할 활용 사례를 만들어 낸다면 우리나라 양자 생태계 구축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양자기술은 단순한 연구개발을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 산업과 국가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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