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달 19일 “민주당은 성장을 중시하는 중도보수 정당”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이 탄핵 반대를 외치며 우클릭을 하는 사이 민주당이 빈 공간을 파고들며 중도층은 물론 보수층까지 공략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선거를 앞두고 당명을 바꾸며 ‘표지갈이’를 하는 것은 봤지만 ‘내용갈이’를 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극우층을 향해 구애하는 여당이나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우클릭하려는 제1야당 모두 이념적 지향성과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는 정당이란 걸 보여준 셈이다.
이 같은 두 장면을 보면서 ‘적대적 공생 관계’를 지속해 온 거대 양당 체제가 낳은 폐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탄핵을 29번이나 반복하는 등 국정의 발목을 잡아온 제1야당의 행태도 비판받을 만했지만 불법 비상계엄 선포라는 ‘레드 라인’을 넘으며 극단적인 선택을 한 윤 대통령의 과오가 상대적으로 더 컸다. 만약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양당 체제가 아니라 이념적 스펙트럼과 정책에 따라 다양한 정당이 존재했다면, 최소한 교섭단체를 구성한 제3당이 있었다면 거대 야당의 폭주도, 비상계엄이라는 파국도 없었을지 모른다.
한국 정치에서 여야가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며 네 탓을 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특히 선거에선 내가 잘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못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반사이익의 효과가 뚜렷하다. 20대 대선에서도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과 ‘이재명은 안 된다’는 정서가 작용하면서 윤 대통령이 0.73%포인트의 근소한 차이로 당선됐다는 평가가 많았다. 헌재의 탄핵 인용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또다시 국민들은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의 선택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이는 승자독식 구조와 고착화된 거대 양당 체제가 낳은 결과다. 이로 인해 정치는 극단화되고 분열과 증오의 언어가 난무하면서 사회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대통령 탄핵을 두 번이나 경험한 한국은 이제 기존의 낡은 정치 구조를 바꾸고 새로운 틀을 만들 때가 됐다.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과 지향성에 따라 만들어진 정당과 그 후보들을 놓고 국민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정당들도 다양한 국민들의 목소리를 내게 해야 한다. 실질적 다당제로 발전시키기 위해선 소선거구제 폐지 등 선거제도 개편을 통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이미 차기 주자들이 비상계엄을 계기로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 등 개헌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고 윤 대통령도 탄핵 기각 시 정치 개혁과 개헌 추진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상대방이 죽어야 내가 사는 정치를 퇴출시키기 위해 선거제도 개편도 함께 논의해야 할 것이다.
황형준 정치부 차장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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