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코스타는 2016년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피델의 동생으로 당시 쿠바 최고 지도자였던 라울을 마주했다. 그는 라울에게 카스트로 정권의 독재와 인권 탄압에 관한 송곳 같은 질문을 퍼부었다. 훗날 “이때가 기자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시기”라며 “폭군에게 고개를 숙여도 좋은 때는 없다”는 소감을 밝혔다.
2세대 이민자인 그는 트럼프 1기의 반(反)이민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2018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은 카리브해 아이티, 아프리카 국가 등을 ‘거지 소굴(shithole)’로 폄훼했다. 아코스타는 당시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왜 이런 표현을 썼냐”고 질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나가”라고 외쳤고 참모진이 그를 밖으로 끌어냈다. 같은 해 11월 그가 중남미 불법 이민자 행렬 ‘캐러밴’에 관한 질문을 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또 화를 내며 “무례하고 끔찍한 인간”이라고 쏘아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승리하자 CNN 측은 오전 10시대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아코스타에게 시청률이 낮은 심야 시간대로 옮기라고 요구했다. 좌천성 인사에 반발한 그는 “권력에 책임을 묻는 것은 언론의 사명”이란 말을 남기고 지난달 28일 퇴사했다. 다만 이 실직은 트럼프 측의 압박이 아닌 CNN 측의 ‘알아서 눈치 보기’ 성격이 강했다.문제는 집권 2기의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이 계속해서 비판적인 언론인에게 노골적인 해고 압박을 가한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 트루스소셜에 워싱턴포스트(WP)의 흑인 남성 칼럼니스트 유진 로빈슨을 거론하며 “무능하다. 즉시 해고돼야 한다”고 썼다. 하루 전 로빈슨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제개발처(USAID) 폐지 시도,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같은 논란이 많은 인사의 기용을 비판한 칼럼을 썼다는 이유에서다.
로빈슨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첫 대선 캠페인을 논평한 칼럼으로 2009년 퓰리처상(논평 부문)을 수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그의 성향도 문제 삼으며 “한심한 급진 좌파”라고 했다. 같은 날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DOGE) 수장 또한 DOGE 일부 직원의 인종차별적 행태를 지적한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백인 여성 기자 캐서린 롱에 대해 “역겹고 잔인하다. 해고돼야 한다”고 썼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NYT, 폴리티코 등 일부 매체의 구독 계약을 해지했고 공영방송 PBS에 대한 지원 중단도 검토하고 있다. 이 행태에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권력자가 언론과 불화하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러나 언론인 개개인을 직접 거론하며 ‘밥줄’까지 끊으려 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임기가 유한한 정치 권력이 언론인에게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가 통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스스로 졸렬해질 뿐이라는 점을 진정 모를까. “‘신문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신문’ 중 하나를 택하라면 후자를 택하겠다”는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말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들려주고 싶다.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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