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종엽]‘노숙인 성지’로 묘사되는 3·1운동의 성지 탑골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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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엽 문화부 차장

조종엽 문화부 차장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2 1회의 주요 무대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이다. ‘딱지맨’(공유)은 이 공원의 노숙인들에게 다가가 ‘자그마한 선물’이라며 복권과 빵 가운데 고르라고 한다. 대부분은 복권을 선택한다. 드라마는 마치 노숙인이 허황되게 ‘한 방’을 좇다가 신세를 망친 이들인 것처럼 왜곡했다. 더 안타까운 건 탑골공원의 묘사 그 자체였다.

‘딱지맨’이 앞에서 빵을 마구 짓밟는 탑골공원 팔각정은 106년 전 3월 1일 독립선언서가 낭독된 3·1운동의 성지다. 헌법 전문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법통이 시작된 곳이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세계인이 가장 많이 본(8700만 회 시청) 이 드라마에서 이 공원은 노숙인들이 대낮에 아무렇게나 여기저기에 누워 있는 공간으로 표현됐다. 이는 실상과도 다르다. 공원 바로 옆엔 무료급식소가 우리 사회에 감로수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기자가 최근 여러 차례 공원을 찾아가 살폈으나 공원 내부에서 노숙인 행색을 한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어쨌거나 세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탑골공원의 이미지는 드라마의 묘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기자가 주변에 이런 얘기를 꺼내자 태반은 ‘실제로 그런 것 아니냐’, ‘탑골공원에서 3·1운동이 시작됐다는 것 자체를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늘날 탑골공원은 1년에 하루 3·1절 기념식이 열릴 때 말고는 사실상 죽은 공간이나 다름이 없다. 공원 안엔 지금은 없어진 옛 문화재 지정번호로 ‘국보 2호’인 원각사지 십층석탑이 있다. 조선시대 석탑의 백미로 꼽히는데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점심시간에 나와서 쉬는 직장인도 찾기 어렵다. 과거 이 공원이 “우리 서민의 정든 곳”, “서울 한복판에서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우리들의 공원” 등으로 인식됐던 것과는 천양지차다.

이렇게 된 큰 원인 중 하나가 공원을 ‘섬’으로 만들고 있는 담장이다. 특히 공원 북쪽과 동쪽 담장 너머 골목은 담장으로 시선이 가려지면서 노상 방뇨와 음주 문제가 오랫동안 심각했다. 지난달 25일 점심때도 남자 둘이 주먹다짐을 해 경찰이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897년 최초의 근대식 공원으로 만들어진 탑골공원은 옛날 사진을 보면 원래도 담장이 있긴 했다. 그 시절에 담장이 없는 열린 공원을 상상하긴 어려웠으리라. 그러나 종로구에 따르면 현재의 담장은 1960년대 지어졌던 ‘파고다 아케이드’ 상가를 철거하면서 1980년대 초 모두 새로 만든 것이다. 유산적 가치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종로구는 지난해 서쪽 담장 가운데 일부를 허물고 발굴 조사를 했지만 원래 담장의 유구는 찾지 못했다고 한다.

종로구는 장기적으로 탑골공원의 담장을 허물고 개방형 시민공원으로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원형을 살리겠다고 굳이 새 담장을 만들어 공원을 계속 고립시킬 이유가 없다. 원래 담장 모습이 어땠는지 확인해 볼 가치야 있겠지만 키가 작은 수목 등으로 경계를 표시하는 정도로 복원하면 족할 것이다. 담장을 허물면 석탑 등 내부 국가유산의 보호가 더욱 중요해지겠지만 지금도 출입이 자유로운데 새로운 안전 문제가 생길 것 같지도 않다. 공원을 다시금 시민의 일상에 들여와 3·1운동의 정신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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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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