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윤정]역대급 실적 낸 은행들 향한 곱지 않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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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실적을 거두고도 눈치를 보는 곳이 있다. 바로 은행들이다. 지난해 사상 최대 이익을 냈지만 이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이 곱지 않자 바짝 몸을 낮추는 모양새다. 호실적이 금융 혁신이 아니라 ‘쉬운 이자 장사’ 결과라는 비판을 의식한 모습인데, 사석에서는 억울하다는 하소연도 흘러나온다. 이자 장사가 그들의 본업이고, 그에 충실했을 뿐이란 얘기다. 코로나19 이후 소상공인 대출 만기 연장에 나서는 등 상생을 위해서도 그 어느 영역보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항변도 이어진다.

은행도 엄연한 기업이고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출이 그들의 대표 상품인데, ‘이자 장사’를 했다고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지난해 내수 침체로 모든 업종이 신음하는 가운데 은행들이 혁신적이고 뛰어난 영업을 펼쳐서 최대 실적을 거뒀다고 할 수 있을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면, 지난해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금융)는 약 42조 원에 달하는 이자 이익에 힘입어 역대 최대인 16조 원을 웃도는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수익의 키는 여전히 대출이었다. 부동산 시장이 되살아나며 주택담보대출 등 대출 수요가 이어진 효과가 컸다. 통상 금리 인하기에는 수익이 쪼그라들지만,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주문’을 명분 삼아 대출금리를 낮추지 않는 식으로 수익을 지켰다는 평가다. 실제로 은행들은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가산금리와 우대금리를 조정해 대출금리를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의 질이라도 탁월했을까. 마중물이 절실한 유망 중소기업들에 돈이 흘러가도록 우리 산업의 실핏줄 역할을 해내는 게 은행에 기대하는 역할일 텐데, 4대 은행의 기업대출 비중은 과거보다는 크게 늘어났지만 아직 전체 대출의 60%에 못 미친다. 그나마도 선진적인 여신심사를 기반으로 한 대출이라기보다는 담보·보증성 대출로, 한정된 대출 자원이 제대로 배분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해외에서의 활약도 미미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활약하며 존재감을 보이고 있는 것은 신한베트남은행 정도다.

게다가 ‘은행이 내 돈을 안전하게 잘 지켜준다’라는 믿음마저도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들을 상대로 ‘매운맛’의 강력한 검사를 예고할 때까지만 해도 ‘이미 선진화된 은행들에서 큰 허물이 나오겠나, 금감원장의 군기 잡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친인척 대출은 이미 드러난 사실이었으니 논외로 하더라도, 여타 은행 영업점에서도 은행 직원이 브로커와 공모해 대출을 내주는 등 부당 대출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

상황이 이러하니 사상 최대 이익을 거둔 은행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높은 은행 문턱을 경험해 본 소비자들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비판을 의식한 듯 최근 금융지주들도 내부통제를 위해 사외이사를 대폭 물갈이하고, 다양한 신사업에 뛰어들며 이자 외 수익에 도전하고 있다. 라이선스 산업의 특수성, ‘관치(官治)’의 그림자에 억눌렸던 혁신의 유전자를 일깨울 때다. 수십 년째 반복되는 ‘이자 장사’ 비판이 은행들도 지겨울 것이다. 은행의 호실적에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수 있게 되길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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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 경제부 차장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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