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유종]해외 공공사업 실패 잦아… 감내해야 새 시장 열린다

4 weeks ago 7

이유종 정책사회부 차장

이유종 정책사회부 차장
필리핀 마닐라에서 북동쪽으로 58km 떨어진 앙가트댐. 마닐라 일대 수돗물의 98%를 공급하고 약 70만 명이 사용할 수 있는 전력도 생산한다. 1967년 일본이 준공한 시설로 필리핀 정부는 2010년 공공 인프라 민영화 정책에 따라 국제 경쟁 입찰을 진행했고 한국수자원공사가 낙찰을 받았다. 필리핀이 다목적 댐 시설을 외국인투자가에게 매각한 첫 사례로 해외 수력발전소의 운영권을 인수한 국내 첫 사례이기도 하다. 하지만 외국 기업이 대형 공공 인프라의 운영권을 확보하자 필리핀 내부에서 논란이 일었고 2014년 수자원공사는 지분 40%만 확보하고 나머지 60%는 맥주 기업으로 잘 알려진 산미겔(San Miguel)에 넘겼다.

준공 이후 반세기 동안 별다른 시설 개선을 하지 않았던 앙가트댐은 매우 낡았다. 아날로그 기술로 지어져 발전량을 최대로 끌어내지도 못했다. 수자원공사는 시설 개선 사업을 추진했다. 2021년 금융권에서 발전설비 현대화에 필요한 돈을 빌려 발전기를 교체하기 시작했다. 발전기 9기 중 6기만 바꿨는데, 이전 발전량을 웃도는 전력이 생산됐다. 전력 판매 단가가 높은 시간대를 중심으로 발전 효율을 높였고 전기를 생산하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내던 ‘무효 방류’ 문제도 해결했다. 한국에서 댐, 정수장 등을 운영하던 노하우가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2020년 319억 원에 그쳤던 앙가트댐 발전소 매출은 지난해 547억 원으로 늘었고 첫 흑자도 기록했다.

수자원공사가 수력발전 시설 지분에 투자한 돈은 약 1000억 원이다. 댐 운영권이 최대 50년 보장되기 때문에 향후 상당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게다가 수익, 배당금 외에도 부가적인 수혜가 발생했다. 수자원공사는 수력발전 시설 리모델링과 관련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포착할 수 있었다. 당장 필리핀에 시설 개선이 필요한 다목적댐만 135개다. 미국과 브라질, 캐나다, 러시아, 인도, 노르웨이 등에 시설 개선이 필요한 수력발전소가 넘치는 상황에서 더 넓은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해외 공공 인프라 사업은 실패하는 사례가 잦다. 또 장기간 투자해야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이 대부분이라 회수 기간이 길다. 매년 국정감사에서 “사업 초기 장밋빛 미래를 그렸던 것과 비교된다. 공기업이 해외 사업에 돈을 물 쓰듯 한다”는 비판도 단골로 받는다. 앙가트댐의 경우 배당금은커녕 수년간 운영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해외 자원 투자의 경우 사업을 진행하다가 경제성을 담보하기 어려워 낭패를 볼 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뛰어넘어야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중국 건설업체가 시공한 방글라데시 파드마대교(길이 6.15km)를 감리했다. 방글라데시는 오랜 침식 작용으로 대부분 모래 지형이다. 지하 100m를 파 내려가도 지지해줄 암반이 없다. 이런 혹독한 상황에서도 도로공사는 인천대교 감리 노하우 등을 바탕으로 꼼꼼하고 안전하게 감리했다. 공사 기간을 늦춘다는 오해까지 받을 정도였다. 결국 방글라데시는 2022년 6월 시공사가 아닌 감리 업체에 운영유지관리사업까지 맡겼다.

해외 공공사업은 유무형의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 쉽게 포기할 수는 없다. 중국과 일본도 이런 사정을 꿰뚫고 공적개발원조(ODA)를 활용해 해외 인프라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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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종 정책사회부 차장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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