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유종]태국서 잘 팔리는 짝퉁 소주… K브랜드 재점검해야 할 때

1 week ago 5

이유종 정책사회부 차장

이유종 정책사회부 차장
태국 방콕 중심가 실롬의 한 편의점. 음료수 냉장고에는 한글로 ‘건배’라고 적힌 소주가 두 줄로 진열돼 있다. 소주에 사과, 포도, 딸기 등 과일즙을 첨가한 과실주도 보였다. 가격은 85밧(약 3600원) 안팎으로 현지 주류기업인 ‘타이 스피릿’이 2019년 출시했다. 반면 자국 소주들은 한 줄로 옆에 보였다. ‘건배’ 소주가 더 잘 팔린다는 의미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확산으로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에선 젊은이들이 한국식 포장마차에서 K팝을 들으며 소주를 마시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현지 한식당도 많아 삼겹살과 치킨을 먹으며 반주하는 게 낯설지 않다. 유행에 민감한 동남아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은 바와 클럽에서 초록색 병을 흔들었다. 이런 영향으로 국내 소주 업체들은 지난해 역대 최대인 1억450만 달러(약 1528억 원)어치를 전 세계에 수출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보이지 않는 소주들이 많다. 건배, 태양, 선물, 자연…. 소주의 인기를 간파한 현지 업체들은 소주를 흉내 낸 제품을 출시했다. 인도네시아 전통 술을 만들던 기업은 ‘대박 소주’를, 필리핀 브랜디 양조장은 ‘행복한 소주’를 내놓았다. 현지 소주들이 빠르게 시장을 점령하고 있으며 대마 성분이 함유된 소주까지 팔린다. 소주 유사품만 수십 종에 달하고 국내 식품안전관리인증(HACCP)을 받았다고 홍보하는 곳도 있다.

그렇다면 현지 소비자들은 소주의 맛을 잘 알고 마실까. 희석식 소주는 고순도 에탄올인 주정에 물을 타고 감미료 등을 첨가해 만든다. 다소 역한 느낌이 들 정도로 맛이 강한 편이다. 반면 동남아 소비자들은 도수가 낮고 달달한 소주를 선호한다. 현지 업체들은 이런 취향을 반영해 사과, 포도, 파인애플 등 과일즙을 첨가한 과실주를 선보이며 점유율을 끌어올렸다. 현지 생산이라 관세가 없고 물류비도 적어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일 수밖에 없다. 이미 튼실한 유통망도 가지고 있다. 국내 주류업체들이 “우리만 소주를 만들 수 있다”고 안이하게 생각하거나 신흥시장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을 때 매대는 유사품들이 점령하기 시작했다.

해법은 무엇일까. 종주국이라는 강점을 살려 차별화를 꾀해야 한다. 현지 양조장들은 불순물을 걸러내는 기술이 떨어지고 짝퉁 소주는 숙취도 심하다. ‘한국산 소주’라는 인증을 따로 만들어 격차를 벌릴 수 있다. 동남아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소주 브랜드는 한두 개에 그친다. 100년 역사를 가진 지방 소주 업체들이 여럿 있는 상황에서 다양한 브랜드를 소개할 수도 있다. 희석식 소주뿐만 아니라 전통 증류식 소주도 출시해 위스키에 맞설 수 있다. 소주와 맥주를 섞는 다양한 한국식 주도 문화를 전달하며 시장을 확대하는 방안도 있다.

현지 짝퉁 제품을 경계해야 하는 상황은 비단 소주뿐만이 아니다. 김치, 고추장 등 거의 모든 제품에서 비슷한 사례가 발생했다. 경각심을 높이지 않다 시장을 빼앗기는 것은 물론 낮은 품질로 K브랜드의 이미지만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재점검할 시기다. 국내 소주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이며 공장 가동률은 하락하고 있다. 국내 제빵 브랜드 파리바게뜨가 바게트 원조국인 프랑스에 진출한 사례가 다른 분야에서도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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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종 정책사회부 차장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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