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가공식품부터 생활용품까지 줄줄이 오른 상황에서 사람들은 장보기 횟수를 줄이고 싼 것에 집중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공개한 지난해 대형마트의 월별 구매 건수·단가는 대부분 전년 대비 감소했다. 지난해 소매판매액지수는 전년 대비 2.2% 줄어 2003년 카드대란 사태(―3.2%) 이후 21년 만에 가장 크게 줄어드는 등 내수는 얼어붙은 상태다.
문제는 올해 물가가 작년보다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단기간에 고유가, 고환율을 탈피할 만한 카드가 마땅치 않은 데다 대내외 불확실성 등 추가 악재도 여전해서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트럼프발 고관세 정책이 물가를 끌어올리는 ‘트럼플레이션(트럼프+인플레이션)’ 영향에 따른 불확실성도 높은 편이다.
고물가로 민생 부담은 커지고 있지만 뾰족한 정부 대책도 없는 상황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8일 국회에서 “물가 상승률은 한은이 금리를 통해 조절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물가 수준이 높은 것은 금리 정책에 더해 구조를 바꾸는, 예를 들어 수입 확대 등 여러 구조 개혁 없이는 단기간에 해결하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밝혔다.앞서 11일엔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식품업계 대표들을 만나 물가 안정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탄핵 정국에서 정부 입김이 얼마나 작용할지는 잘 모르겠다. 이날 참석한 업체 대표들은 인상 폭을 최소화하고 인상 시기를 최대한 늦추겠다고 했지만 이미 상당수 업체들은 올해 들어 줄줄이 가격을 올린 바 있다.
‘인플레이션을 이기는 정권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물가는 민생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다. 미국 경제 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 당시 인플레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발로 당선됐다”며 “인플레의 부활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물가가 더 오를 것을 대비해 화장지나 비상식품 등을 사재기하는 ‘파멸 소비’ 행태도 등장했다. 미국 못지않게 체감 물가가 빠르게 오르고 있는 한국도 이 같은 소비 심리가 남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고물가로 실질소득이 줄어들면 소비가 꺾이게 되고 이는 생산과 투자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어느 때보다 물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할 시점이지만 컨트롤 타워 부재 속에서 고삐 풀린 물가는 좀처럼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고물가 시대에 가장 고통받는 이들은 일부 부유층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들이다. 여야 정치권과 정부는 생활고를 유발하는 물가 상승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생각보다 크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신수정 산업2부 차장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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