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수정]10년 넘은 유통산업발전법, 유통 발전에 기여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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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정 산업2부 차장

신수정 산업2부 차장
평소 이용하던 대형마트가 주말에 문을 닫으면 어디서 장을 볼까? 10명 중 5명(49.4%)은 집 근처에 문을 연 슈퍼마켓이나 식자재 마트, 온라인 쇼핑을 이용한다고 했고 3명(33.5%)은 문 여는 날에 맞춰 마트를 방문한다고 답했다. 전통시장에서 장을 본다는 답변은 16.2%였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대형마트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4일 전국에 126개 매장을 갖고 있고 직원 수가 2만여 명에 이르는 국내 2위 대형마트인 홈플러스가 영업실적 악화로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한 가운데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규제 등이 담긴 유통산업발전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홈플러스가 어려워지게 된 배경으로는 대주주인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의 부실 경영도 있지만 10년 넘게 이어진 대형마트에 대한 불합리한 규제도 영향을 줬다는 의견이 많다.

전통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2012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대형마트는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 영업할 수 있고, 월 2회 의무휴업일을 지정해야 한다. 의무휴업일과 영업 제한 시간에는 온라인 주문 배송 서비스도 할 수 없다. 전통상업보존구역 반경 1km 내에는 출점도 불가능하다.

그간 여러 조사에 따르면 대형마트 규제는 취지와 달리 전통시장 활성화에 도움을 주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마트 규제의 덕을 가장 많이 본 곳은 전통시장이 아니라 365일 영업이 가능한 식자재 마트와 이커머스 업체들이었다. 오히려 대형마트가 폐점하면서 유동 인구가 줄어들자 근처 전통시장과 소상공인들의 매출이 감소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대구와 청주에서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공휴일에서 평일로 바꾼 뒤 주변 요식업체의 매출이 늘었다. 주말에 가족과 마트에 장을 보러 왔다가 식당으로 향하는 집객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2010년대만 해도 대형마트가 국내 유통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해 ‘유통 공룡’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옛말’이다. 소비자들의 구매 행태가 온라인으로 바뀌고 팬데믹으로 비대면 쇼핑이 활발해지면서 현재 국내 유통시장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곳은 쿠팡을 비롯한 이커머스 업체들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4년 연간 유통업체 매출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유통업체 매출 가운데 온라인 비중은 50.6%로 절반을 넘은 반면 대형마트 비중은 11.9%에 그쳤다. 지난해 쿠팡의 매출은 41조2901억 원으로 전체 대형마트 판매액(37조1779억 원)보다 많았다.

현재 국내 유통시장에는 대형마트 규제보다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소위 ‘알테쉬’로 불리는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 같은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은 초저가를 무기로 국내 유통시장을 무섭게 잠식하고 있다. 물가 상승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농산물 독과점 유통구조 개선도 신경을 써야 하는 과제다.

유통시장을 둘러싼 환경은 10년 전과 비교해 크게 바뀌었다. 유통산업발전법 같은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규제가 지속되는 것이 과연 국내 유통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 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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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정 산업2부 차장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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