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희창]‘뉴 노멀’ 환율에 물가 들썩… 말발 안 먹히는 정부

1 week ago 4

박희창 경제부 차장

박희창 경제부 차장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정상)’이 된 1400원대 중반 원-달러 환율이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달 휘발유와 경유 등이 포함된 석유류 가격은 1년 전보다 6.3% 뛰었다. 국제유가 자체는 지난해 2월과 비교하면 오히려 내렸다. 그런데도 석유류 가격이 오른 건 환율이 100원 넘게 치솟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평균 원-달러 환율은 1446원으로 1년 전보다 114원 상승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던 지난해 12월부터 월평균 환율은 1437원에서 1456원을 오갔다.

재료 가격이 오른 데다 환율까지 고공행진하면서 식품 업체들의 가격 인상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농심은 17일부터 신라면 한 봉지 가격을 1000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새우깡도 이젠 1500원을 줘야 한다.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스팸 가격은 이달 들어 이미 9.8% 올랐다. 학생들이 편의점에서 즐겨 먹는 소시지도 다음 달 200원 인상을 앞두고 있다. 빵과 아이스크림, 커피는 연초에 가격이 올랐다.

치솟은 환율의 영향이 물가에 다 반영된 것도 아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내놓은 보고서에서 환율이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환율 변동 후 9개월이 될 때 가장 커졌다가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특히 최근처럼 환율이 크게 올라 3개월 이상 지속됐을 때는 장기적으로 물가 상승률을 밀어 올리는 폭이 더 컸다. 고환율이 길어지면 가격 인상에 나서는 업체가 더 늘어나고 환율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

정부는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하고 나섰지만 말발이 안 먹힌다. 지난달 중순부터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차관이 잇달아 식품, 외식 업체들을 만나 가격 인상 요인을 최소화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런데도 가격이 오르는 가공식품 목록은 연일 늘어만 간다. 계엄·탄핵 정국으로 정부의 ‘그립’이 약해진 틈을 타 업체들이 가격을 올리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도 식품 업체들은 앞다퉈 가격을 올렸다.

1년 9개월 전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당시 정부가 주원료인 밀 가격이 떨어졌다며 라면 가격을 인하할 필요가 있다고 하자 라면 업체들은 13년 만에 값을 내린 바 있다. 밀 가격은 하락했지만 그때도 원-달러 환율은 전년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이달 라면 가격을 인상하겠다는 이유는 환율과 원재료비 상승이다. 그러나 모든 원재료 가격이 다 오른 건 아니다. 지난달 국제 밀 가격은 라면 값이 내린 2023년 6월보다도 낮았다.

식료품 가격이 오르면 소득이 적은 이들의 부담이 더 크게 늘어난다. 저소득 가구일수록 소득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4분기(10∼12월)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가 식비로 쓴 금액은 전체 가처분소득의 45%에 달했다. 반면 소득 상위 20%에 해당하는 가구는 이 비중이 15%에 불과했다. 최근 프랑스에선 식료품을 살 수 있도록 매달 150유로가 충전되는 ‘식품복지카드’를 전국적으로 도입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가격 인상 자제가 무색해진 만큼 여러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밥값이 부족한 이들이 라면마저 못 먹는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광화문에서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 광화문에서

    광화문에서

  • 사설

  • 횡설수설

박희창 경제부 차장 rambla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