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 가격이 오른 데다 환율까지 고공행진하면서 식품 업체들의 가격 인상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농심은 17일부터 신라면 한 봉지 가격을 1000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새우깡도 이젠 1500원을 줘야 한다.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스팸 가격은 이달 들어 이미 9.8% 올랐다. 학생들이 편의점에서 즐겨 먹는 소시지도 다음 달 200원 인상을 앞두고 있다. 빵과 아이스크림, 커피는 연초에 가격이 올랐다.
치솟은 환율의 영향이 물가에 다 반영된 것도 아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내놓은 보고서에서 환율이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환율 변동 후 9개월이 될 때 가장 커졌다가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특히 최근처럼 환율이 크게 올라 3개월 이상 지속됐을 때는 장기적으로 물가 상승률을 밀어 올리는 폭이 더 컸다. 고환율이 길어지면 가격 인상에 나서는 업체가 더 늘어나고 환율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
정부는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하고 나섰지만 말발이 안 먹힌다. 지난달 중순부터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차관이 잇달아 식품, 외식 업체들을 만나 가격 인상 요인을 최소화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런데도 가격이 오르는 가공식품 목록은 연일 늘어만 간다. 계엄·탄핵 정국으로 정부의 ‘그립’이 약해진 틈을 타 업체들이 가격을 올리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도 식품 업체들은 앞다퉈 가격을 올렸다.1년 9개월 전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당시 정부가 주원료인 밀 가격이 떨어졌다며 라면 가격을 인하할 필요가 있다고 하자 라면 업체들은 13년 만에 값을 내린 바 있다. 밀 가격은 하락했지만 그때도 원-달러 환율은 전년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이달 라면 가격을 인상하겠다는 이유는 환율과 원재료비 상승이다. 그러나 모든 원재료 가격이 다 오른 건 아니다. 지난달 국제 밀 가격은 라면 값이 내린 2023년 6월보다도 낮았다.
식료품 가격이 오르면 소득이 적은 이들의 부담이 더 크게 늘어난다. 저소득 가구일수록 소득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4분기(10∼12월)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가 식비로 쓴 금액은 전체 가처분소득의 45%에 달했다. 반면 소득 상위 20%에 해당하는 가구는 이 비중이 15%에 불과했다. 최근 프랑스에선 식료품을 살 수 있도록 매달 150유로가 충전되는 ‘식품복지카드’를 전국적으로 도입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가격 인상 자제가 무색해진 만큼 여러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밥값이 부족한 이들이 라면마저 못 먹는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박희창 경제부 차장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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