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6·3 지방선거 본투표일에 벌어진 사상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해 선거 이틀 뒤인 5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하지만 사과문은 얄팍했다. 선관위는 2022년 ‘소쿠리 투표’, 2025년 ‘투표용지 반출 사태’ 등 부정선거 음모론자의 먹잇감이 된 무능하고 어처구니없는 관리 실패를 되풀이했다. 사과문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 계속 반복돼 결국 투표용지 부족 사태까지 이르렀다고 해야 했다.
선관위원장의 사과와 사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대선 때는 코로나19 확진·격리 유권자들이 기표한 투표용지를 소쿠리, 라면상자, 비닐 쇼핑백에 담아 옮긴 ‘소쿠리 투표’ 논란으로 노정희 위원장이 사과하고 사퇴했다. 2023년 5월 이른바 ‘아빠 찬스’로 촉발된 선관위 자녀 특혜 채용 논란은 2025년 감사원 감사를 통해 대규모 채용 비리로 확인됐다. 이에 노 위원장은 대국민 사과문을 내고 “다양한 외부 통제 방안도 적극 검토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같은 해 5월 대선 때는 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용지 30∼40장이 투표소 외부로 반출되는 일이 있었다. 투표소 내 대기 공간이 부족하다며 투표용지를 받은 유권자들을 건물 밖에서 대기시키자 일부는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오기도 했다. 이때도 노 위원장은 “투표 부실 관리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1년 만에 벌어진 결과가 투표용지 부족 사태다.특히 선관위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초기, 대응에 실패한 채 파장을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선관위는 선거 당일 밤 서울 송파, 강남, 광진구 등 14곳의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틀 뒤엔 서울 부산 인천 대구 울산 경남 등 전국적으로 50곳으로 늘었다.
선관위는 투표용지 부족 이유에 대해선 이번 선거부터 ‘투표용지 최소 50% 인쇄’ 지침을 내린 탓이라고 설명했다. 투표용지가 과다하게 남는 경우가 많고 선거가 끝난 뒤엔 사용, 미사용 투표용지를 전량 보관해야 해 공간 부족 문제도 있다는 것이다. 참정권 행사를 뒷받침해야 할 선관위가 행정 편의 논리로 리스크를 방치한 것이다.
선관위는 1963년 출범 후 60여 년간 몸집과 권한만 키워 ‘초갑(超甲) 기관’이 됐다.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이 벌어졌을 때도 선관위는 감사원 직무감찰에 반발해 권한쟁의심판을 제기해 이긴 조직이다. 외부 통제를 받지 않으니 주요 선거를 앞두고 선관위 직원들의 대량 휴직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반복된 대국민 사과와 무의미한 지도부 동반 퇴진을 보면 선관위가 스스로 환골탈태할 가능성이 없음이 분명해졌다. 선관위는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중앙선관위원장 상근제 검토, 휴직 자제 등을 약속했지만 ‘소나기 피하기’식에 그쳤다. 결국 여야가 선관위 개혁과 통제 강화 법안 처리에 힘을 모아 선관위를 낱낱이 해체해 밑바닥부터 새로 짓는 수밖에 없겠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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