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뒤 신혼집을 알아보려 다시 찾은 동네에선 재건축 소식이 꽤 구체화된 상태였다. 용적률이 낮은 역세권 단지고 집값이 2억 원대로 초기 투자비가 적다는 장점이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안전진단, 조합 설립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다들 몇 년 뒤면 번듯한 신축이 될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라 2021년 여름 8억 원을 찍었다.
얼마 전 접한 소식은 장밋빛 미래와는 딴판이었다. 아직 삽조차 뜨지 못했다. 조합은 2년 전 시공사를 선정했다가 공사비 등을 둘러싼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해 계약을 해지했고 이 때문에 소송에 휘말린 상태였다. 집값은 4억 원대 후반으로 떨어졌는데 예상 분담금은 5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서울시가 신속한 사업 추진을 약속한 ‘서울형 재건축 1호’ 단지가 분담금 폭탄에 발목을 잡힌 대표 사례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요즘 재건축 현장에선 공사비와 분담금을 둘러싼 갈등이 일상이 됐다. 조합은 예상보다 많은 분담금 때문에 사업 계획을 다시 짜거나 공사비 인상을 요구한 건설사와 소송을 벌이고 있다.과거 사업성이 좋은 단지에선 분담금 없는 ‘공짜 재건축’도 가능했다. 분양 수익이 전체 사업비보다 많아 환급받는 사례도 있었다. 분담금이 나와도 실제 부담은 크지 않았다. 계약금만 내고 중도금은 대출에 의존하면 그만이었다. 입주 시 한꺼번에 내는 이자는 주택담보대출이나 세입자 보증금으로 충당했다. 재건축 투자가 ‘로또’처럼 여겨진 이유다.
그런데 이런 성공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공사비가 오른 만큼 분담금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자 부담이 늘었을 뿐만 아니라 분담금이 대출 가능액을 웃돌아 현금 부담이 커진 것이다. 덩달아 분양가도 올랐다. 그런데 분양 경기가 역대급으로 침체된 상황이다.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7만173채로 2012년 이후 최대치다. 조합원들은 자칫하면 미분양으로 인한 손실까지 떠안아야 한다는 뜻이다.
2020년 이후 지금까지 공사비는 30% 넘게 올랐다. 부동산 업계에선 미국의 관세 정책과 환율 변수로 공사비는 향후 더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재건축 현장을 잘 아는 한 변호사 취재원은 “앞으로 재건축 착공 후 물가 상승에 맞춰 공사비를 올리는 게 당연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완공 후 확정되는 분담금은 착공 때 예상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사업 환경 변화에 맞춰 사업성을 높여주는 정책을 하나둘씩 내놓고 있다. 국민들도 달라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웃 단지를 압도하는 ‘대장주’가 되기 위한 차별화 설계가 이득인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핵심 입지의 극소수 단지를 제외하면 대장주 프리미엄으로 인한 집값 상승분보다 고급화로 인한 공사비 부담이 더 클 수 있다. 과거 성공 공식에 사로잡혀 로또처럼 재건축을 대하는 건 그만해야 한다. 더 이상 공짜는 없다. ‘몸테크’(낡은 집에 살며 재건축하면 버티는 것)를 하든, 입주권을 사든 제값 주고 사야 하는 시대다.김호경 산업2부 차장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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