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곽도영]량원펑에게는 있고 우리에겐 없는 것

1 month ago 9

곽도영 산업1부 기자

곽도영 산업1부 기자
지난주 글로벌 증시를 ‘딥시크 쇼크’가 뒤흔들었다. 오픈소스를 기반으로 투자 비용을 95% 절감하면서 주요 벤치마크(성능 테스트)에서 챗GPT를 뛰어넘은 딥시크의 출현을 두고 서방 세계 스스로 ‘스푸트니크 모멘트’라며 충격을 감추지 않았다.

딥시크를 성공으로 이끈 량원펑 최고경영자(CEO)에게도 스포트라이트가 쏠린다. 지난해 11월 현지 전문 매체인 차이나토크에 량원펑과의 장문 인터뷰가 실렸다. 아직 세상의 주목을 끌기 전 량원펑의 생각과 포부가 담겼다. 일부 문장들을 통해 량원펑에게는 있고 우리에겐 없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볼 수 있다.

‘우리는 대부분 명문대를 갓 졸업했거나 박사 과정 중인 젊은이들이다.’ 알려져 있듯 딥시크의 150명 안팎 직원들은 2030세대가 주류다. 대부분은 직업 경력이 없는 신입 직원이다. 이런 채용 철학에 대해 량원펑은 기존 경험이 있는 이들은 그 정해진 루트대로 사고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오랜 노동 경직과 인력 적체로 신규 채용마저 없애는 게 한국 기업들의 현주소다. 동아일보가 4대 그룹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기반으로 임직원 연령대를 분석한 결과 삼성전자 임직원 중 20대 이하 비중이 2023년 처음으로 30% 아래로 떨어졌다. 나머지 그룹 대표 계열사들도 이미 30%를 밑돈다. 창의와 혁신보다는 당장의 조직을 유지하는 데 투입 가능한 경력 채용 의존도만 높아지고 있다.

‘최고의 인재는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끌린다.’ 량원펑과 함께 주목받는 건 중국의 토종 과학 인재들이다. 수학 천재였던 량원펑 본인뿐만 아니라 딥시크 개발에 핵심 역할을 한 30세 뤄푸리, 문샷AI의 양즈린 등 국내파 이공계 스타의 지속적인 유입과 보상이 이뤄지는 구조다. 이공계의 진로 불확실성으로 의대 쏠림이 고착화되고, 과학 인재 양성을 위한 백년지대계는커녕 연구개발(R&D) 예산조차 삭감하고 있는 국내의 인재 환경이 새삼 씁쓸해지는 대목이다.

‘우리는 중국이 무임승차자가 아닌 기여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량원펑은 2023년 딥시크를 창업하며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AI)을 만들겠다’는 꿈을 내걸었다. 또 그간 서구가 주도해 온 첨단산업에의 무임승차를 멈추고, 근본적인 기술 혁신을 자국에서 해내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품었다. 결국 물질적 보상을 뛰어넘는 한 개인의 꿈이 딥시크의 스푸트니크 모멘트를 이끈 것이다. 보상과 처우에 따라 삼성에서 SK로, 또 그 반대로, 혹은 해외 기업으로 명함을 바꾸며 ‘남에게 뒤지지 않는 연봉’만이 유일한 유인이 돼 버린 우리의 직장 문화에는 그런 꿈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그런 게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이해진 김범수 창업자가 삼성을 박차고 나와 1세대 정보기술(IT) 벤처 신화를 연 적이 있었다. 김정주 창업자가 작은 오피스텔 책상에서 한국 온라인 게임의 신화를 쓴 적이 있었다. 지금 량원펑에게 있지만 우리에게 없는 것들은 원래부터 없었던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다. 딥시크 쇼크로 미국이 틀어쥐고 있던 고비용 AI 산업 구도의 균열은 분명 시작됐다. 이를 경종으로 받아들이고 한국의 기업가정신을 되살리는 불씨이자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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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도영 산업1부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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