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테크업계에서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의 ‘더 리스트(The List)’가 화제다. 이 리스트는 저커버그가 작성한 ‘영입하고 싶은 인재 명단’이다. 명단은 비공개지만 오픈AI, 구글 딥마인드 등에서 인공지능(AI) 모델을 만든 핵심 연구 인력들 이름이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2030세대로, 선형대수학·통계학 등에 능통한 이들이다. 저커버그는 최신 AI 논문을 하나씩 뒤져가며 리스트를 만들었다.
저커버그는 인재마다 선호하는 연락 방식을 미리 파악한 후 메시지를 보낸다고 한다. AI 기술에 관한 대화를 나누자며 캘리포니아 자택으로 저녁 식사에 초대하는 식이다. 제안 연봉은 수천만달러에서 수억달러에 달한다. 채용이 확정되면 직접 책상 배치까지 챙긴다. 회사를 통째로 사들이는 일도 망설이지 않는다. 메타는 스케일AI에 143억달러(약 19조7000억원)를 투자하면서 이 회사 창업자인 알렉산드르 왕을 초지능연구소 리더로 앉혔다.
'1만 배 엔지니어'의 등장
역설적인 건 이렇게 인재 영입에 진심인 저커버그가 불과 몇 달 전 전체 메타 직원의 5%에 달하는 3600명을 감원했다는 사실이다. 수천 명의 연봉을 깎아 AI 슈퍼 인재 몇 명을 데려오는 데 쓰고 있는 셈이다. AI 시대엔 적당히 우수한 인재 수백 명보다 단 한 명의 천재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 그 배경에 있다. 실리콘밸리에선 예전부터 평균의 엔지니어보다 높은 성과를 내는 ‘10배(10X) 엔지니어’가 종종 언급됐다. 지금은 ‘1만 배(10000X) 엔지니어’를 찾는다. 메타 내부 관계자는 “요즘은 AI 연구 성과보다 누구를 뽑았냐가 더 관심사”라고 말했다. AI 최전선의 기술 전쟁이 핵심 인재 확보 경쟁으로 구현되고 있다는 얘기다.
현재 빅테크들이 집중하는 초지능 AI 개발은 그동안 인류가 시도한 적 없는 도전이다. 과거 패턴으론 풀 수 없는 복잡한 문제를 다루고 AI가 촉발할 사회 변혁 방향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 전쟁에 뻔한 교육 방식을 거쳐 관료주의적 기업에서 성장한 인재는 필요 없다. 깊은 통찰과 직관, 더 나은 세계를 만들겠다는 철학까지 갖춘 슈퍼 연구자만이 초지능 AI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 수 있다. 그런 소수 연구자를 한 명이라도 더 확보하는 게 그 어떤 인프라 투자보다 중요하다는 게 빅테크 인재 경쟁의 이면에 있다.
'특이점'에 필요한 인재는
중국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은 중국 매체 인터뷰에서 “딥시크에 신비한 천재는 없다.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이 대다수”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청년들은 딥시크의 치열한 검증 과정을 거쳐 선발된 중국 내 최정예 군단이다. 딥시크는 경시대회 입상 경력을 확인하고 막대한 연봉을 제시하면서 젊은 인재를 빨아들였다. 화려한 경력 대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사람을 찾아냈다. 150명 안팎의 정예팀 전열을 갖춘 딥시크는 미국 빅테크를 뛰어넘는 AI 모델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최근 블로그에 올린 ‘온화한 특이점(gentle singularity)’이란 제목의 에세이에서 AI의 경이로움이 일상화된 지금이 사실상 이미 특이점에 도달한 시점이라고 했다. ‘온화한’이라는 표현은 기술이 인류에게 과격한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변곡점엔 과거와 완전히 다른 인재가 필요하다. 검증된 방식보다 틀을 깨는 것을 선택하고, 무조건적인 속도가 아니라 깊은 직관과 통찰을 통해 판단하고, 개인적인 인정 욕구보다 인류에 더 나은 세상을 열어야 한다는 철학이 더 중요한 이들이다.
오픈AI와 딥시크도 창업자의 직관과 철학을 바탕으로 시작됐다. 올트먼과 량원펑이 경쟁 기업 CEO가 아니었다면 일찌감치 저커버그 리스트에 들어갔을 것이다. 지금 한국엔 저커버그가 탐낼 만한 인재가 몇 명이나 있을까. 단기적인 정부발 AI 프로젝트나 대기업의 관료주의적 인재 정책으론 당분간 이름을 올리기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