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행동할 때, 아이 아닌 ‘아이가 가진 어려움’ 보세요[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6 days ago 4

〈219〉아이에 대한 최고의 공감법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청소년을 대상으로 상담 일을 하는 한 선생님이 계셨다.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가치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상담을 받던 아이가 갑자기 불량한 태도를 보이거나 욕설을 하거나 이미 화가 난 상태로 만나러 오면 심장이 사정없이 요동을 친다고 했다. 마음을 다잡아 보려고 하지만,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아이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백했다.

‘나는 이 아이를 한 인간으로 귀하게 여기고 잘 지도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렇게 봐야 할 대상이 나를 공격할 것 같다. 어떤 때는 무섭다. 싫어지기도 한다. 화도 난다.’ 이분은 그런 마음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무척 힘들었다. 많은 번뇌도 들었다. 그런 마음을 여러 번 경험하면 ‘내가 이 일을 계속 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회의도 들고, 자신감도 점점 떨어질 것이다. 괴로움이 심해지면 사람이 싫어지고, 사람이 싫어지는 자신에게 ‘참담함’도 느낄 수 있다.

레지던트 4년 차로 한 정신병원에 파견 근무를 나갔을 때의 일이다. 그때 상담을 하던 환자가 “잘 지내세요?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으세요?”라는 내 말에 다짜고짜 의자를 들어서 던지려고 했다. 비상벨도 없던 시절이라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은 모르지만, 그 사람의 증상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바로 “내가 다 잘못했어요. 내가 불편하게 했네요” 하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환자가 점차 안정됐다. 그 사람의 정신병리를 이해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특별히 나를 표적으로 나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언제나 최고의 공감은 상대가 가진 문제나 어려움을 제대로 이해할 때 이뤄진다.

이분과 같은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인간이기 때문에 느끼는 당연한 공포다. 두려움을 느꼈다고 무능한 것도, 치졸한 것도 아니다. 아이를 도와줄 힘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공포가 계속되면 일을 하기는 많이 힘들 것이다.

그럴 때는 어려운 일이지만 아이가 아니라 ‘아이가 가진 어려움’을 봐야 한다. 그 어려움 중에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도 많다. 부모와의 관계가 너무 나쁜 아이들은 어른에게 무조건 적개심을 가진다.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어려움이다. 나의 좋은 의도만으로 아이가 가진 문제나 어려움을 아주 빨리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그냥 짜장면 한 그릇 사주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 “너 배고프니? 화내는 것도 기운이 있어야 할 수 있어. 뭣 좀 먹어라” 하면서 말이다. 다 먹고 “저 가도 되죠?” 하면 “응, 얘기를 한번 해보기는 해야 돼. 담에 하자” 하는 것이 훨씬 나을 수 있다. 화가 많이 나 있으면 “얘기는 꼭 해야 되는데 오늘은 네가 많이 힘든 것 같으니 집에 가서 좀 쉬고 다시 얘기하자”라고 할 수도 있다. 너무 좋은 마음으로 아이를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하다 보면 어떤 면에서는 선을 넘을 수 있다. 선을 넘는 걸 조심해야 한다.

이분의 고백을 들으며 ‘아, 이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여전히 애정이 많구나’라고 생각했다. 이런 일로 심장이 두근거리고 어떨 때는 화도 난다는 것은 그 아이들을 도우려고 하는 마음이 많기 때문이다. 뭔가 하려고 하니까 나오는 반응이다.세상에는 내가 아무리 잘해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고 어려운 사람들이 반드시 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냥 알고 있어야 한다. 회사에도 있고 고객 중에도 있다. 그러면 좋아하는 일터인데도 출근하기가 싫어진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그런 사람을 맞닥뜨리는 것은 그냥 운이 나쁜 것뿐이다.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두 가지를 꼭 기억했으면 한다.

첫 번째는 그 일로 자존심이 건드려지지 않도록 한다. 그러면 문제가 커진다. 원래부터 나쁜 사람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싸움을 하면 내 피해가 더 커진다. 그런 사람은 구정물이라고 생각하고 얼른 하수로 흘려보내야 한다. 그 사람을 계속 담고 있으면 내가 더러운 통이 된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두렵거나 싫어질 때는 그 사람을 보지 말고 나를 봐야 한다. 그럴수록 나 자신에게 따뜻하게 말해줘야 한다. “나는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라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야. 가치 있는 일이지. 누가 나한테 어떻게 말한다고 해도 그것은 훼손될 수 없는 부분이야. 나는 그래서 괜찮은 사람이야. 이런 일로 나는 흔들리지 않아”라고 말이다.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당당하게 많이 해줘야 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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