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 강의를 수강하는 것만으로 이력서에 큰 ‘스펙’ 한 줄을 추가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입니다.”
지난달 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주립대(SJSU) 캠퍼스에서 만난 컴퓨터시스템 전공 학생 안셀 개딩건(22) 씨는 “이 강의를 들으면 아마존웹서비스(AWS)의 클라우드 인증을 취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취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가 듣는 ‘클라우드 파운데이션’은 SJSU가 AWS와 손잡고 운영하는 산학협력 강의다.
AWS는 ‘AWS 아카데미’라는 이름의 교육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019년부터 SJSU에 자사 클라우드, 최신 커리큘럼, 강의 자료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SJSU는 이 강의를 정규 과정에 포함시켜 모든 컴퓨터시스템학과 학생들이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최대한 많은 학생들이 듣도록 하기 위해 전공 문도 넓혔다. 실제 이 강의에서는 경영학·컴퓨터공학 등의 타전공 학생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AI 인재에 목마른 美 빅테크
미국에서 빅테크와 대학 간 산학협력이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실무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취업 문을 넓혀주려는 대학과 자신들의 기술 요구에 맞게 사전 훈련된 인공지능(AI) 및 공학 인재풀을 넓히려는 기업의 니즈(필요)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클라우드 파운데이션 강의를 진행하는 리차드 그로테구트 SJSU 교수는 “AWS 아카데미를 수료한 학생들은 해당 분야에서 일하는데, 모두 기업이 요구하는 기술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달리 1년간 업무 관련 추가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며 “취업 경쟁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입소문에 같은 강의 수강생은 6년 전 200명에서 시작해 이번 학기엔 600명까지 늘었다”고 말했다.
SJSU가 속한 캘리포니아주립대(CSU)가 대표적이다. 미국 최대 공립대학 시스템인 CSU는 지난 2월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엔비디아·오픈AI·AWS 등 10개 기업과 손잡고 AI 전환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SJSU 등 CSU를 구성하는 23개 대학의 학생 46만명 및 6만3000명의 교직원 모두를 대상으로 AI 실무 교육을 진행해 AI 인재를 양성하는 게 핵심이다. 각 기업의 지원을 받아 학생들이 챗GPT 등 각종 AI 도구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CSU는 다양한 인종·계층·지역 출신 학생들로 구성됐다는 점을 앞세워 자신들이 AI 교육의 보편화를 실험할 수 있는 이상적인 테스트베드라는 점을 내세워 기업들을 끌어들였다.
대학들은 빅테크와의 산학협력이 학생 유치에 큰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학생들이 이론이 아닌 실제 산업 현장에서 사용하는 기술을 익힐 수 있어 취업에 유리하다는 게 드러나고 있어서다. 실제 SJSU는 컴퓨터시스템학과 커리큘럼과 운영 전반에 걸쳐 AWS 뿐 아니라 시스코와도 협력하고 있다. 시스코는 대학에 최신 네트워크 장비를 갖춘 실습실을 제공해줄 뿐 아니라 학업과 유급 실무 경험을 병행할 수 있는 견습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프레드 바레즈 SJSU 기계공학과 학과장은 “우리 학생들을 고용할 기업들이 실제 어떤 기술을 사용하고 어떤 인재를 필요로 하는지 아는 건 매우 중요하다”며 “AI를 도구로 잘 활용할 수 있는 인재가 대학과 기업이 모두 원하는 인재”라고 말했다.
트럼프發 R&D 예산 삭감이 기폭제 돼
트럼프 행정부의 R&D 예산 삭감은 역설적으로 대학이 기업과 더욱 밀착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미국 대학의 R&D 보조금의 큰손으로 꼽히던 국립보건원(NIH)의 2026 회계연도 예산은 270억달러(약 37조원)으로 전년 대비 42.6% 줄었다. 국립과학재단(NSF)의 예산도 기존 90억달러에서 40억달러로 55.6% 줄었다. 최근 NSF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미국 대학 R&D 자금의 55%가 연방정부에서 나왔다.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6%에 불과했다. 하지만 가장 큰 두 축을 차지하던 NSF와 NIH의 예산이 반토막나며 대학들은 기업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이런 틈을 파고든 건 기업도 마찬가지다. 현지 테크업계에서는 대학과의 공동 연구가 혁신 기술 개발에 대한 리스크(위험)를 분산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특허나 논문과 같은 지식재산권(IP)를 확보하기에도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자사 기술에 특화된 맞춤형 인재를 육성할 수 있다는 점은 가장 큰 유인이다. 나이젤 왓슨 아마존웹서비스(AWS) 이사는 “AI는 우리 세대의 가장 변혁적인 기술이지만 정작 이 기술을 효과적이고 책임 있게 사용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오히려 사회적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많은 기업이 ‘AI를 도입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인재를 어디서 어떻게 키울지 고민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온라인 교육 플랫폼 코세라에 따르면 기업의 94%는 대학이 학생들에게 AI 기술을 교육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AI 관련 자격증 보유자가 경력이 많은 것보다 낫다고 응답한 기업도 전체의 75%에 달했다.
실리콘밸리=송영찬 특파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