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편향에 휘둘리지 않는 투자… ‘퀀트 투자’ 대가 사이먼스[이준일의 세상을 바꾼 금융인들]

1 week ago 5

제임스 사이먼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제임스 사이먼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이준일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

이준일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
투자는 냉철한 분석과 판단, 기민한 대응의 예술이다. 투자의 구루들이 독서와 학습을 강조하는 것은 두뇌에서 점멸하는 생각의 불꽃들이 직관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연료를 공급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인간의 두뇌는 한계가 있고 감정과 편향에 시달리기 쉽다.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고, 감정의 영향을 받지 않는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투자를 한다면 어떨까? 퀀트(Quant·계량분석) 투자자들이 바로 이러한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며, 세계적인 헤지펀드회사 ‘르네상스 테크놀로지’ 설립자 제임스 사이먼스(1938∼2024)는 그 대표적 인물이다. 그의 성공이 촉매가 돼 오늘날 금융시장에서 알고리즘 트레이딩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거래량의 절반에 이른다.

사이먼스는 평범한 미국 유대인 가정의 외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수학에 재능을 보였다. 23세에 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받고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에서 재직할 만큼 빠른 성취를 이뤘지만 더 큰 보람과 보상을 찾아 26세에 국가안전보장국(NSA)으로 이직해 무의미해 보이는 데이터에서 패턴을 파악하고 해석하는 암호 해독 연구를 했다.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인터뷰가 문제가 돼 파면된 뒤에는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수학과 학과장으로 부임해 미분기하학의 대가 천싱선(陳省身) 교수와 함께 훗날 수만 번 인용되는 ‘천-사이먼스 이론’을 발표했다. 그러나 마음속 투자에 대한 갈망은 커져만 갔고 결국 마흔 살이 되던 1978년 학계를 떠나 투자회사를 설립했다.

사이먼스는 인간의 직관을 배제하고 데이터에서 신호를 찾기 위해 수학, 물리학, 천문학, 공학 등 그간의 금융계와 거리가 있는 인재만을 채용했다. 처음부터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다. 시장의 변동성과 예상치 못한 사건들에서 손실을 보며 좌절하기도 했다. 이럴 때면 ‘통계모델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해 온 사이먼스 자신조차도 인간의 불안감을 극복하기 어려웠다. 예측모델의 결과를 이해할 수 없거나, 시장이 급변할 때면 임의로 거래에 개입했다. 여러 시행착오와 토론을 거치고 나서야 모델이 사람보다 우수한 장기 실적을 거둔다는 것을 인정하고 모델에 전적으로 의사결정을 맡겼다.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의 주력인 메달리온 펀드의 1988∼2018년 30년간 연평균 수익률 66%는 그의 시도가 옳았음을 보여준다.

사이먼스의 회사가 수십 년 전부터 해 온 일은 오늘날 인공지능(AI)으로 불리는 것들이다. 전문 인력을 고용해 신문, 책, 자료집, 공시, 릴 테이프 등에서 각국의 과거 주가, 원자재 가격, 채권 수익률, 날씨 기록 등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결측값과 오탈자를 찾아내고 이상치를 보정하며 오류를 제거하고 시간대별로 동기화하는 작업을 해냈다. 풍부하고 믿을 수 있는 양질의 자료가 예측 성공률을 높이는 결정적 요인이었다. 예측은 100번 중 51번 미만을 맞히는 것에 불과했지만 ‘꾸준하게’ 맞히는 것이 막대한 수익의 비결이었다. 작은 우위를 반복해 누적시키는 것이다.

사이먼스의 성공은 단순히 데이터의 활용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편향을 극복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투자는 자신의 생각을 꾸준히 개선하려는 노력의 예술이다. 절반은 틀릴 수 있다는 겸손함,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내 생각의 1% 개선을 위한 노력의 누적이 투자 성과뿐만 아니라 인생의 성과를 이끌 것이다.

이준일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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