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영 KERIS 원장지난 1월, 영국 교육부가 주최한 'UK 인공지능(AI) 고위급 회의' 참석차 런던을 방문했는데, 같은 주에 'OECD 디지털 교육 세미나'와 'BETT 2026 고위급 심포지엄'이 연이어 열렸다. 세 차례 회의에서 논의된 주제는 하나였다. 전 세계 교육 현장에 빠르게 스며들고 있는 생성형 AI(Gen AI)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였다.
2022년 말에 챗GPT가 등장한 이후 불과 4년여 만에 교육의 양상은 이전과 근본적으로 다른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이전의 교육 기술과 달리 생성형 AI는 무료로 접근 가능하고 사용이 직관적이어서, 교사와 학생 모두 이미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다. OECD는 2024년을 기준으로 중등학교 교사의 37%가 이미 업무에서 AI를 활용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번 세미나에서 공개된 OECD '디지털 에듀케이션 아웃룩(Digital Education Outlook) 2026'은 생성형 AI가 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적 연구와 전문가 통찰을 바탕으로 종합 분석한 보고서다.
◇'교육적 목적' 없는 AI 활용의 위험성
전 세계 교육 관계자들이 공통으로 강조한 메시지는 'AI가 교육에 도움이 되는가'가 아니었다. '왜,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핵심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다수의 실험 연구에서 일반적인 생성형 AI로 학습하면 단기 성과는 높게 나오지만, AI 접근이 차단된 뒤 치른 평가에서는 성과가 현저히 낮아졌다. 과제 수행의 질은 올라가지만 정작 학습은 이뤄지지 않는 역설이다. 이를 '메타인지의 게으름(metacognitive laziness)', 즉 자기 주도성의 약화라 표현할 수 있다. 수학 문제에서 답을 보고 옮겨 적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외관상 공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지적 과정에서 학습자의 주도성이 빠져 있다. 우리가 처음 가는 길을 내비게이션을 활용해 목적지를 찾아 운전해 가지만 어떤 길로 갔는지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우리 교육 현장에서도 학생이 평가의 과정에서 AI를 활용해 문제가 된 바 있고, AI를 활용해 과제를 해결하고 보고서를 제출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본인이 고민하지 않고 수학 문제를 풀고,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작문하는 것은 외관상 공부를 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인지적 과정에서 주도성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교육자들은 어디까지가 학생의 사고이고 어디까지가 AI의 산출물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평가의 신뢰성이 흔들리고, 학습의 본질이 흐려지는 현실에 대한 진지한 교육적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교육 목적으로 설계된 AI와 교사 전문성
반면 '교육적으로 설계된 생성형 AI'를 활용한 경우에는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OECD 보고서는 생성형 AI를 탑재한 지능형 튜터링 시스템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기존의 경직된 디지털 튜터를 자연스러운 대화 기반 상호작용이 가능한 교육 에이전트로 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이루어진 실증 연구에 따르면 경험이 부족한 교사도 교육용 AI 도구를 활용함으로써 튜터링의 질을 높이고 학생의 학업 성취도를 유의미하게 향상시킬 수 있었다.
OECD 보고서가 함께 강조하는 것은 교사가 AI 설계와 활용 과정에서 주도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교사의 전문성이 AI 도구 설계에 통합될 때, 교사 혼자서도 AI만으로도 달성할 수 없는 교육적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교사와 개발자가 함께 AI 도구를 공동 설계(co-designing)하는 것이 교육적 가치를 보장하는 방법 중 하나로 제시된다. 다만 피드백이나 평가 같은 핵심 교육 활동을 AI에 과도하게 위임하면 오히려 교사의 교육 주도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경고도 분명히 담겨 있다. 교사가 학생과 자신의 AI 활용 패턴을 모니터링하며 학습 과정을 안내하는 '전문적 의사결정자'로 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의 균형 잡기
생성형 AI의 일상화는 기존 교육 방식의 근본적 재검토를 요구한다. 최종 결과물에 초점을 맞추는 전통적 평가 모델은 점차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학생이 무엇을 산출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학습에 참여하여 그것을 만들었는가를 평가하는 '과정 중심 접근'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토론, 발표, 포트폴리오 기반 성장 추적 등 AI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역량'을 기르도록 교육하고 평가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다.
생성형 AI의 교육적 활용에서 형평성은 매우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국가 간·지역 간·계층 간 디지털 인프라 격차는 AI 교육 격차로 직결될 수 있다. 편향성, 개인정보 보호, 투명성 등의 문제를 다루는 정책·규제 프레임워크가 학습자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교육 혁신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마련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교육을 위한 AI 플랫폼 구축, 교사의 전문성 향상을 위한 연수, 학생 데이터 보안, 교육용 AI의 품질 기준 마련 등에서 선도적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이 경험을 국제 사회와 공유하고 글로벌 기준 마련에 기여하는 것도 우리 교육계의 역할이다.
글로벌 교육 담론이 우리에게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기술이 교육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목적과 철학이 기술의 활용 방식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가 전문적 역량을 갖추고 주도적으로 AI를 도구로 활용하는 교육이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학생 한 명 한 명의 성장을 이해하고 격려하며 방향을 제시하는 교사의 역할은 대체될 수 없다. AI를 인간의 깊이 있는 사고와 창의적 역량을 확장하는 도구로 자리매김하도록, 교육 현장과 정책이 손을 맞잡고 지혜로운 방향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가속화되는 교육 패러다임 과정에서 올바른 활용의 균형잡기가 중요한 과제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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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영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원장
〈필자〉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원장을 맡고 있는 미래교육 전문가다. 정 원장은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44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사무관과 서기관을 거치며 교육정책 기획 및 집행을 수행했다. 이화여대 교수로 부임해 교육학과장, 호크마교양대학장, 기획처장, 미래교육연구소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한민국 교육과 학술정보 시스템의 디지털 대전환을 선도하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제12대 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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