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업 연구에서는 상업 공간을 일상성을 드러내는 가정집 형태로 꾸미는 것을 ‘가사성(Domesticity)’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가사성이란 ‘가정에 속한’이란 뜻에서 유래된 단어로, 마치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집과 같은 공간 경험을 선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의 귀스타브 에펠대, 로잔대, 에섹 비즈니스스쿨 교수들로 이뤄진 공동 연구진은 해외 명품 업체들이 실제 상업적인 공간에 가사성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현장 연구를 진행했다. 파리에 있는 구찌, 아르마니, 에르메스 등 90개 브랜드 매장의 내부 운영 방식을 연구한 결과, 다양한 명품 매장이 크게 ‘위장(Disguise)’, ‘교배(Hybridization)’, ‘병치(Juxtaposition)’라는 3가지 전략적 틀 안에서 가사성을 다루고 있음을 발견했다.
첫째, 위장이란 명품 브랜드들이 가정집처럼 느껴지는 장치들을 통해 상업적인 의도를 교묘하게 위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의도적으로 브랜드 이름을 숨기고 매장 입구를 가정집 입구처럼 만들거나 가정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테이블을 제품 매대로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들 역시 상업적인 의도를 숨기도록 훈련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제품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기보다는 판매원이 공간을 운영하는 브랜드의 역사나 해당 공간을 만든 디자이너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하거나, 딱딱한 어투보다는 마치 친구처럼 친숙하게 말하도록 훈련하는 것이다.둘째, 교배란 같은 공간에서 상업적인 요소와 가정집의 요소가 자연스럽게 섞이도록 하는 전략이다. 위장 전략이 비상업적인 요소를 활용해 상업적인 요소를 교묘하게 숨기는 것이라면 교배는 상업적인 요소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면서 비상업적인 요소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배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판매에 효율적인 상업적인 인테리어를 구성하면서도 곳곳에 가정집 감성이 느껴질 수 있는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배치하는 것이다.
예컨대, 최근 매장 곳곳에 책들이 자연스럽게 놓여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판매용이기보다는 해당 매장의 브랜드를 창업한 사람들의 이야기나 브랜드의 역사를 담은 책들이 많다. 이런 인테리어는 고객이 원한다면 책이 놓인 테이블 인근의 편안한 의자에 앉아 책들을 살펴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매장 벽에 브랜드와 연관된 자연스러운 예술 작품을 걸거나 창업자 가족의 사진을 걸어두는 것도 대표적인 교배 전략이다.
마지막으로 병치란 교배처럼 한 공간에 상업적인 요소와 가정집 요소를 섞지 않고 비교적 정확하게 공간을 나눠 배치하는 전략이다. 명품 브랜드는 매장을 방문한 고객이 제품을 둘러본 후 특정 제품을 입어보고 구매하고자 할 때 VIP 라운지라는 특별한 공간으로 별도 안내하는 경우가 흔하다. 외부의 상업 공간과 분리된 채 고객은 가정집처럼 편안하게 앉아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 옷을 입어보고 판매원으로부터 관련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이런 형태의 VIP 라운지 운영은 대표적인 병치 전략 중 하나다. 명품 브랜드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가사성을 활용해 좀 더 대중적인 방식으로 매장 경험을 전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가사성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명품 브랜드가 유지해야 할 독특성과 희소성이란 가치가 희석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 본 연구는 이처럼 명품 브랜드가 배타성(Exclusivity)과 대중적인 포용성(Inclusivity)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지침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이 글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10호(2월 1호) ‘‘더 친숙하게’ 가정집 같은 리테일 스토어의 전략’을 요약한 것입니다.
이승윤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seungyun@konkuk.ac.kr
정리=최호진 기자 ho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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