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촉발한 글로벌 전력난…핵융합 상용화 시간이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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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35개국이 참여해 프랑스 남부 카다라슈에 건설 중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내부. /ITER 제공

전세계 35개국이 참여해 프랑스 남부 카다라슈에 건설 중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내부. /ITER 제공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투자해 유명해진 미국 핵융합 스타트업 ‘헬리온’이 4일(현지시간) 시리즈G 투자 유치에서 155억달러(약 24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 받았다. 헬리온은 2028년까지 핵융합 발전소를 상용화한다는 공격적인 시간표를 내세우며 이번 투자 유치에서 4억6500만달러(약 7194억원)를 빨아 들였다. 지난 주에는 독일 포커스드에너지, 미국 테아에너지 등 핵융합 스타트업들도 각각 2억4000만달러(약 3713억원), 1억달러(약 1547억원) 규모의 투자를 잇달아 유치했다.

인공지능(AI)이 촉발한 글로벌 전력난이 ‘꿈의 에너지’로 불리는 핵융합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먼 미래의 일로 여겨지며 정부 주도 연구에 머물던 핵융합에 천문학적인 민간 자본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친환경적이고 위험 폐기물이 없는 핵융합이 AI 시대의 돌파구로 떠오르면서 상용화 시계도 당겨지고 있다.

정부 주도로 ‘1억℃의 벽’ 두드려

AI가 촉발한 글로벌 전력난…핵융합 상용화 시간이 빨라졌다

핵융합 기술은 인류의 전력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꿈의 에너지원’으로 꼽힌다. 친환경적이고 안전하며 연료가 고갈될 우려가 없다. 핵융합은 원자를 쪼개는 핵분열과 달리 가벼운 원자핵들을 서로 합쳐 에너지를 만든다. 태양이 에너지를 내는 원리다. 핵융합은 장치가 고장 나면 불꽃이 꺼지듯 반응이 즉시 멈춰 대형 사고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수백 ㎏의 연료로 원자력발전소 한 기에 해당하는 1기가와트(GW) 발전소를 1년 내내 돌릴 수 있는 효율을 자랑한다.

핵융합 연구를 주도해 온 것은 정부였다. 온도와 통제라는 거대한 벽 때문에 상용화 시점이 빨라야 2040년대로 예측돼 민간이 투자를 하기엔 어려웠다.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려면 입자들을 초고온 상태(플라즈마)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온도가 1억도 이상이다. 태양 중심보다 뜨거운 온도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플라즈마를 자기장에 안정적으로 가둬야 하는데 플라즈마의 특성상 통제가 극도로 어렵다는 게 문제다. 한국의 유일한 핵융합 장치 KSTAR나 35개국 공동 프로젝트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등도 모두 정부 주도로 진행된 프로젝트다.

AI 붐이 민간자본 깨워

공공 영역에 머물던 핵융합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AI가 있다. 생성형 AI를 작동시키기 위한 데이터센터가 늘며 전력 수요량이 기하급수적으로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2024년 415테라와트시(TWh)에서 2030년 945TWh로 약 2.3배로 증가한다. 기존의 태양광과 풍력은 날씨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문제가 있고 원자력 발전은 사회적 거부감이 여전히 걸림돌이다. 빅테크 기업들이 핵융합 기술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이유다.

핵융합산업협회(FIA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최근 1년간 핵융합 분야에 유입된 민간 투자액은 26억4000만달러(약 3조8000억원)로 전년보다 178% 증가했다. 유럽연합(EU)의 퓨전포에너지 보고서는 민간 핵융합 시장에 흘러든 누적 투자액이 130억유로(약 22조원)를 기록하며 2020년 대비 8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민간의 돈이 돌자 상용화 목표 시기도 당겨지고 있다. 정부 주도 사업들이 2040년대 이후를 내다봤던 것과 달리 민간 기업들은 훨씬 공격적인 상용화 목표를 제시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독립한 스타트업인 CFS는 지멘스 및 엔비디아와 협력해 2030년대 초 상용 발전소 ‘아크(ARC)’ 가동을 정조준하고 있다.

박종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CFS는 민간 핵융합 기술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전세계에서 인정 받는 젊고 유망한 인력들을 데리고 공격적인 목표를 세우고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이들이 상용화 성공은 전체 핵융합 업계의 상용화 시간표를 앞당기는 데도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직은 갈길 먼 韓 생태계

글로벌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한국도 핵융합 골든타임에 올라타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시스템반도체, 메모리에 이어 전력이 AI 발전의 병목이 되며 미래 에너지원 확보가 경쟁의 승부처가 되고 있어서다.

정부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 핵융합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1124억원으로 책정해 작년(564억원) 대비 99% 증액했다. 혁신적인 도전을 지원하는 ‘K-문샷’ 프로젝트에도 관련 과제를 포함시켰다.

다만 극복해야 할 약점도 뚜렷하다는 평가다. 미국과 유럽에 비해 국내 민간 생태계는 초기 단계에 있다. 다른 선진국들이 수조원대 민간 스타트업을 키워내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스타트업·자본 생태계가 얇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김영철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핵융합의 친환경성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조 단위 투자가 빈번히 이뤄지고 있다”며 “특히 유럽은 민간 투자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같이 참여해 위험을 분담하는 방식이 보편화돼 있는데, 우리도 이런 방식을 차용한다면 더 많은 민간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허진 기자 h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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