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쿠데타’ 이후 45년 만에 군이 또다시 정치적 중립을 저버리면서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장병들의 사기도 끝간 데 없이 추락했다. 최고 권력자의 불의에 맹종해 국민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려 한 전·현직 군 지휘부는 엄정한 심판을 받고, 이에 동조한 군 내 세력은 발본색원돼야 할 것이다. 군이 다시는 비뚤어진 권력의 ‘도구’로 악용되지 않고, ‘국민의 군대’로 바로 서도록 만드는 것이 신임 국방 수장의 가장 중요한 책무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군 내부에서 이뤄지던 주요 결정들을 문민 장관이 조율하고 통제하면서 국방 정책 전반에 대대적인 변화의 바람이 예상된다. 군 안팎에서도 문민 국방 수장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무엇보다 민주적 통제 원칙에 따라 군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국방 정책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휴전 이후 대북 억제를 최우선시하는 국방 기조 탓에 정부 출범 초기를 제외하고 국방부 장관은 예외 없이 군 출신 일색이었다. 특히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군 요직을 독식하면서 국방부가 ‘육방부’로 불리던 시절도 있었다. 특정 군과 특정 출신에 편중된 군은 그 폐쇄성이 더 심화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능력보다는 지연과 근무연을 앞세운 ‘패거리 문화’가 군에 단단히 똬리를 틀었고, 이는 정치 군인의 군사 반란과 불법적 계엄 사태를 촉발시킨 자양분이 됐다.문민 국방 수장은 외부의 시각을 반영해 군 내 폐습과 잘못된 관행을 일소하고, 위계적 불투명성을 개선하는 원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 국방 예산의 효율성을 높이고, 군 내 인권을 증진하는 데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많다.
국방 정책을 좀 더 거시적이고 전략적인 차원에서 수립하고 집행할 수 있다는 것도 문민 장관의 장점으로 꼽힌다. 군 출신 장관은 군 내 작전과 지휘 구조 등은 훤하지만 외교와 경제, 과학기술 등 외부 요소를 고려한 총합적 국방 정책을 설계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문민 장관은 군 안팎의 다양한 변수와 이해 관계를 조율함으로써 좀 더 전략적인 국방 운영이 가능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국민의 눈높이에서 군과 사회의 간극을 메우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장병과 그 가족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를 병영문화 개선을 비롯한 군을 발전시키는 기폭제로 활용한다면 국민의 군에 대한 신뢰는 더 탄탄해질 것이다. 세계 최대 군사강국인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문민 인사가 국방부 장관을 맡는 것도 이 같은 장점들 때문일 것이다. 반면 불안과 우려 섞인 시선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군사적 전문성과 현장 경험 부족은 문민 장관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된다. 북한의 기습 도발 등 분초를 다투는 위기 상황에서 군사적 식견과 작전적 이해가 미흡한 문민 장관은 적시적 결정과 명령을 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군 지휘부와의 엇박자나 의견 충돌이 빚어질 개연성도 있다.군 내부의 반발과 리더십 확보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위계질서가 근간인 군 조직에서 오랜 기간 군에 몸담아 온 고위 장성 지휘관들이 민간 출신 장관의 지시를 받아들이는 데 심리적 거부감이나 저항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군의 통솔력에 영향을 미쳐 자칫 정책 집행을 둘러싼 군 수뇌부 간 갈등과 마찰로 확대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때문에 문민 장관이 성공하려면 더욱 신뢰받는 강군을 건설하겠다는 정책적 의지와 함께 유능한 군 전문가들과의 긴밀한 협업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군 내 참모진의 전문성과 경험을 존중하고, 이를 최대한 활용하는 동시에 국가전략 차원에서 국방 정책의 방향을 설정하는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통해 국방 개혁과 병영 문화 개선, K방산 부흥 등 주요 과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해 성과를 일궈내야 한다. 북핵 문제와 미중 패권 경쟁, 신흥 안보 위협 등 대한민국이 직면한 다층적 안보 위기 앞에서 국방은 무기로만 지킬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외교와 첨단 기술, 경제, 정보력이 총동원되는 ‘종합 안보’의 시대를 이끌어 나갈 문민 리더십은 분명히 필요한 시도라고 필자는 본다. 그 시도가 반드시 성공해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익을 증진시키고, 바람직한 국방 리더십의 선례로 남길 기대한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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