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금값이 무서운 속도로 오르고 있다. 2015년 8월 이후 추세적으로 상승하던 금값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상승 탄력을 받고 있다. 조만간 ‘마(魔)의 벽’으로 불리는 트로이온스당 3000달러 선도 뚫을 기세다.
금값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많으나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인플레이션이 불거질 때다. 실물 가치가 변하지 않는 금은 헤지(위험 회피) 목적으로 선호된다. 다른 하나는 전쟁, 이상 기온, 국가 부도와 같은 불확실성 변수가 많아질 때다. 안전자산인 금 수요가 증가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71년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금 태환 정지를 선언하기 전까지는 인플레 헤지든 안전자산이든 금 기능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보관 비용 등을 고려하면 가치가 보장된 달러화가 선호됐기 때문이다. 금 태환 정지 이후 스미스소니언 체제, 자유변동환율제를 거치는 기간에도 금값은 크게 변동하지 않았다.
금값이 처음으로 불안해지기 시작한 때는 2차 오일 쇼크 이후다. 경기 침체 속에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을 맞아 인플레 헤지 목적으로 금 수요가 늘어났다. 다만 미국의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통제권에 놓임에 따라 여전히 달러화가 안전자산 역할을 하며 금값 상승폭이 크지는 않았다.
금값이 한 단계 뛴 것은 금융위기 이후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한 2011년 트로이온스당 1800달러대까지 급등했다. 3000달러가 넘을 것이란 ‘골드 유포리아’ 기대까지 확산했다. 이후 미국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험이 급감하자 금값은 다시 1060달러대로 주저앉았다.
문제는 트럼프 당선 이후다. 과거와 다른 이유로 금값이 오르고 있어서다. 바로 ‘다중 복합 공선형’이다. 금값 상승의 최대 원인은 인플레 헤지 수요다. 작년 9월 2.4%(전년 동기 대비)까지 떨어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3.0%로 뛰었다. 관세 부과, 이민 규제, 불법 이민 색출 등과 같은 트럼프노믹스를 고려하면 물가는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도 위험 수위를 넘은 지 오래다.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중심으로 해결책을 찾고 있지만, 지금 추세라면 6월쯤 ‘X-데이트’를 맞을 확률이 높다. X-데이트는 국가채무 원리금 상환 여력이 바닥나 모라토리엄(국가채무 불이행)이나 디폴트를 맞는 상황이다.
안전자산 선택 범위가 제한된 것은 또 다른 금값 상승 요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광인과 홍수 전략’으로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과정에서 미국 국채와 달러화의 안전자산 기능이 예전만 못해졌다.
약 15년 만에 찾아온 달러 유포리아 덕분에 ‘골드뱅킹’ 시대가 다시 열리고 있다. 골드뱅킹은 골드바를 직접 제작해 유통하는 유럽식, 금 관련 금융상품을 사고파는 미국식으로 구분된다. 국내에선 2013년 7월 골드뱅킹이 시작됐는데, 전자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서구에선 금 스와프, 금 선물 등 파생상품보다 골드바와 금 계좌, 금 대여 상품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금융위기를 거치며 강화된 복잡한 파생상품 규제가 여전해서다.
일부 금융회사는 ‘글로벌 스위트 스폿(sweet spot)’으로 금 투자를 권유하고 있다. 스위트 스폿은 테니스 라켓, 야구 배트, 골프 드라이버 클럽 등을 말할 때 흔히 쓰는 용어다. 공이 가장 빠르고 이상적으로 날아가는 최적의 타격점이다. 최고의 수익이 기대되는 투자처라고 할 수 있다.
거품이 끼면 반드시 붕괴하기 마련이다. 1987년 선진국 주식시장, 1997년 개발도상국 외환시장, 2007년 선진국 주택시장에 이어 금을 비롯한 상품시장에서 다음 위기가 올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글로벌 스위트 스폿으로 금 투자를 권유하는 게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 이유다.
금값은 금 시장 자체보다 인플레, 경기, 달러 가치, 시장참여자 심리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미래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트럼프 당선 이후엔 다중 복합 공선형이어서 더 어렵다. 그 어느 때보다 ‘균형의 미학’을 발휘해야 할 때다